한국일보

칼럼/ 9.11 4주기를 보내면서

2005-09-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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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우리가 젊었을 때는 시 한 토막을 들어 잔인한 달을 4월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서는 9월을 잔인한 달로 생각한다. 10년이 가고, 20년이 가고, 또 100년이 가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9.11테러가 이 9월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돌아오는 9월은 우리에게 잔
인한 달로 기억되고 각인되어 있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9.11 테러는 국가도 사회도 없는 무적자들의 행위였다. 이들은 얼마 안 되는 소수의 집단으로 평화로이 잘사는 사회가 있거나, 안정되고 복되게 사는 나라가 있을 경우 어지럽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이들은 성공을 하여도 제대로 된 사회를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무엇이건 어지럽히는 데에만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가 올바로 형성되고 앞길이 바로 내다보일 리가 없다. 이런 집단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훤하다.


물론 9.11 사태로 인해 가족들에게 피눈물을 남겨놓고 귀중한 생명을 잃은 희생자들,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백년이 가도 이 9월을 잔인한 달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불구덩이 속에서 죽어간 3,000여 희생자들도 참혹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참담했
다. 테러에 의해 숨진 희생자는 3,000여명이었으나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전 세계인이었다. 그들은 그 처참했던 광경을 TV나 라디오를 통해 보고 들었다. 이들에게 보여진 광경은 정작 거기서 죽어간 희생자들보다 더 참혹해 9.11을 다시 상기시킬 것 같으면 해답이 없는 어처구니
다.

9.11 사태는 왜 일어났으며, 왜 일어나야 했으며, 또 그들 집단은 이로 인해 무슨 효과를 보았나? 우리에게 남은 건 9.11만 생각하면 살고 싶지 않은 암울함밖에 없다. 그만큼 이 사건은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끔찍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서에도 예정에도 없던, 9.11 테러가 발생한 9
월이 오면 모두가 이 달을 참혹하고 잔인한 달로 떠올린다. 테러는 이렇게 정치적, 사회적으로만 있는 것인가? 세상을 살면서 개개인이 상대를 질투하고 이웃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비방하는 것도 실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아주 무서운 테러다. 이런 식으로 테러를 당하는 어떤 개인은 “세상살이가 참혹하다”, “세상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세상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한다. 그러나 어떤 개인을 상대로 테러적인 행위를 한 사람
은 무슨 소득이 있고, 덕을 봤고 혜택이 있는가.

그들은 테러를 자행한 테러분자처럼 남을 테러하는데 성공했더라도 이 사회에서 정당한 일원이 될 수 없다. 얻을 것이 하나도 없는 행위, 우리는 지금도 알게 모르게 주위에서 많은 테러를 당하고 살며 또 어느 때에는 어떤 사람을 대항해 무어라도 하고 싶은 울분이 들 때도 있다. 그러
나 그것을 자제하고 참아내는 사람이 교양과 인격, 삶의 가치를 자기 인생에 놓을 줄을 아는 사람이다.특히 미국에 이민온 우리들은 대개 여기서 서로가 참 친한 것 같지만 상대방의 내용을 잘 모른다, 또 내용도 잘 밝히려 들지 않는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전력이 뭔지 모르고 그가 어디서 난 사람이고 어디서 자랐는지, 또 무슨 가정교육과 어떤 학교교육을 받았는지 그 본체를 잘 모른다. 이민 온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것들을 밝히지 않은 것과 그래서 아무리 겉으로 가까운 척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깊이 사귈 수가 없다. 뭔지 모르게 사람은 만나게 되면 항상 테러라는 미지수의 공포에, 두려움에 쌓여 혹시 가까이 했다 무슨 일을 당하지 않나 걱정부터 하게 된다.

가까이 다가갔다 해를 당하는 결과를 주위에서 종종 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 이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불행이 또 어디 있겠는가.살다보면 꼭 정치적인 테러만이 아니라 무수한 테러를 우리의 생활에서도 경험하게 된다. 서로간에 이해관계가 잘 맞지 않는다 해서 인신공격을 한다던가, 상대를 말로 무시하고 격하시키는 것도 일종의 테러다. 9.11같은 테러만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상대를 짓밟는 말이나
행위도 다 작은 종류의 테러다. 남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고, 자기 이득만을 노리는 행위, 이것이 모두 테러의 범주에 속한다. 꼭 정치적이나 이데올로기로 인한 테러만이 테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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