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이 그리운 아이들

2005-09-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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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권(동부제일교회 목사)

한국사람으로서 ‘심청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할머니나 어머니에게서 흔히 듣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허구적 인물인 심청이 말고도 부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한 실제적 인물들이 많이 있어 왔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효녀 지은이’는 신라 진성여왕 때 사람이다. 장님이 된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품팔이나 구걸을 해서 찬 잡곡밥을 얻어다가 어머니를 섬겼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더운밥을 지어드리는 것이 소원이었다. 쌀 10섬에 자신을 부잣집 종으로 팔아 소원을 이루었다. 종일 그 부잣집에서 일해주고 밤이면 집으로 와서 더운밥을 지어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전에는 찬 잡곡밥을 먹을 때도 마음이 편했는데 왜 요즈음은 더운밥을 먹는데도 이렇게 마음이 칼로 베어내는 것처럼 아프냐”고 물었다. 딸은 사실대로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어머니와 딸은 서로 부둥켜 안고 한없이 소리높여 울었다. 이 광경을 화랑도였던 효종랑이 목
격하고 부모님께 청하여 곡식 백석을 효녀 지은이에게 주었고, 낭도들 천명도 각각 한 섬씩을 주었으며 이 소식을 들은 왕도 쌀 500석과 집을 하사했다고 한다.


악장가사에 나오는 ‘사모곡’은 어머니 사랑을 이렇게 애절히 노래하고 있다. <호미도 날이기는 하지만/낫 같이 들 리가 없으니이다/아버님도 어버이시긴 하지만/위 덩더 등셩/어머님 같이 사랑하실 이 없어라/아소 님하 어머님 같이 사랑하실 이 없어라>사모곡과 유사한 노래로서 목주가(木州歌)가 있다. 목주가가 있게 된 사연을 요약하면 이렇다.목주에 아버지와 계모를 극진히 섬긴 효녀가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는 물론, 계모에게도 정성을 다 해 섬겼으나 계모의 계속된 농간으로 집을 쫓겨났다. 산중에서 만난 노파에게 간청하여 노파와 함께 살면서 그 노파를 지성껏 섬겼더니 노파가 자기의 아들과 짝을 지어주었다. 부부가 열심히 일해 거부가 되었는데, 완전히 망한 부모의 소식을 듣고 효녀가 부모님들을 모셔다가 열심히 섬겼으나 아버지와 계모가 크게 기뻐하지 않으므로 너무도 슬퍼서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이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다. 과부가 된 후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로 와서 시어머니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겼다. 시어머니 주선으로 유다 족속의 부호 보아스와 결혼하여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 룻은 자기 친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를 섬겨 복을 받았다(롯기 1장~4장)우리나라 효녀들이나 롯은 모두 가난하고 불행하게 된 아버지나 어머니들을 섬겼다. 행복한 양부모 밑에서 좋은 교육 받고 자라서 부모를 잘 섬기는 효자들, 효녀들은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그러나 위의 효녀들은 모두가 빈한한 환경 가운데서도 불행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극진히 섬겼다는 것에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다.오늘날 자식들에게 퍼붓는 부모들의 사랑은 과잉을 넘어서 거의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부모들에 대한 자식들의 사랑은 부모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것이 이제는 보통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나며, 섬겨보고 싶지만 섬길 부모가 없는 자녀들도 수없이 많다. 이혼을 하면서 자녀들 버리는 것을 예사로 하고, 살기 어렵다고 자녀를 버리고 가출하는 부모들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육아원, 보육원이 넘쳐나고, 동네마다 십대 가장 가정들이 적지않다고 한다.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서는 안된다. 사랑도 받고 자라야 한다. 그래야 신체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정상이 된다. 그런데 먹는 것도, 사랑도 부실한 가운데 자라는 아이들, 사랑을 받고 싶을 뿐만 아니라 사랑해 보고 싶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부모 노릇 하기는 힘들지라도 당신이 먼저 빵과 사랑은 베풀 수 있지 않을까? 교회들이 먼저 그들에게 사랑과 빵을 주는 운동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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