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옷은 나의 좋은 소개장

2005-09-1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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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우(복식가)

우리는 매사에 현명하지만 가장 가까이 할 것을 멀리하고 쉽게 할 것을 어렵게 하고, 잘 아는 것 같으면서 모르는 것같은 일로 인해서 삶에 허실이 많은 것처럼, 의식주는 우리 삶에 전부라면 전부인데 그 중 하나인 의생활이 어떻게 중요한지 잘 아는 것 같으면서 모르는 부분이, 많은 사람들은 남이 자기를 겉으로만 보고 판단해 버리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남의 사 어찌됐건 상관 말라는 주의자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무사 태평한 사람도 있다. 선(禪)가에서 제일로 내세우는 분별심이 다 망상이니 마음을 비우면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어떤 경지를 얻는다고 하는데, 불교는 차별 있음이 그대도 참모습의 세상이라고도 한다.어쨌거나 우리의 현실은 분별심을 일게하는 차별로 꽉 차여 있다. 오래 지내본 사람은 어떤 차림을 하던 그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판단되지만 세상은 겉차림으로 보아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는 그의 판단이나 느낌에 대해서는 아무런 채도 하지 않으니 저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차별대우까지 한다.


이런 일은 때도 장소도 없이 어디서나 일어난다. 그래서 느낌으로 받는 불이익은 어디에다 대고 하소연도 못한다. 무엇보다 업신여김은 신흥 부자가 많은, 그리고 소견이 좁은 사회일수록 더 노출이 힘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부티를 내야한다는 풍조도 그런 사회에선 나올만 하다. 까십거리도 모두 그런 것이고 가짜라도 명품이래야 된다고 야단들인 것 같다.아무튼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옷은 나의 좋은 소개장이란 말이 서양사회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거기에 적합한 것 같다. 내가 바르게 단정한 차림을 해서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좋은 대우를 받는다는 뜻일 게다. 이런 상식 정도는 보통 사회에 있는 통념이다. 그러나 옷차림의 중요성에 대해 좀 더 재고해 보면 지난 세기 동안 전세계 사람들의 옷차림은 양장(洋裝)으로 바뀌어 지금은 마치 세계 통용복처럼 되었다. 그런 나라 중에 우리도 끼어 있다.

아마 영국에서 그런 고상한 양장이 나오지 않았었다면 세계 각 나라들은 각기 자기 나라 고유의상을 아직도 입고 있을거라고 복식계에서는 말한다. 그렇게 될만 했던 것은 시각적인 컷에도 있었지만 매너, 그리고 캐릭터가 있는데 가치관을 둔 옷이기 때문인 것이었다. 즉 그것은 영국적인 엘레간스를 말하며 특히 남성복의 기원이 된다. 그러나 오늘날 그 가치관이 난발처럼 되어지고 있지만 그 전통성은 유지하고 있다. 영국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150년 전 아일랜드 출신으로 일찌기 옥스포드에서 수학했다.

윗트로도 장을 열어 영국사회에 영향력이 컸던 사람이지만 스타일에도 관심을 두어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는데, A man’s first duty is to his tailor, what his second is, nobody has yet discerned.
우리는 옷이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말할 것을, 이 말의 뉘앙스는 문화의 차이인지 이 사회 사람들, 특히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신조로 하고 있다. 이민 온 우리들은 여러 면의 문화 차이를 견디면서 익숙하여지는 것 같지만 그 차이를 살면서 새록새록 실감한다.

우리는 그동안 힘들었지만 이민이란 궁상스런 센티멘탈은 이제 떨어버리고 앞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할 자손에게 이 사회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긍지를 심어주어야 할 것 아닌지, 어느 사이 이 나라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그들이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것을, 공연히 무엇이라도 뒷받
침 해주지 못하여 안타까운 것은 이민 1세의 노파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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