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미국이 왜 이러나

2005-09-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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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인류에게 알려져 있는 가장 큰 홍수는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이다. 사람을 창조한 여호와가 사람들이 악해지자 모두 홍수로 쓸어버리기로 하고 노아에게만 방주를 만들어 가족과 정결한 생물을 대피케 하여 구원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너무나 유명한 이 이야기가 가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문명을 처음으로 일으킨 수메르 민족이 점토판에 남긴 설형문자를 해독한 결과 기원전 3000년 경에 이와 비슷한 홍수 설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인 즉,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인간들이 본래의 임무인 신에 대한 봉사를 게을리하자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을 쓸어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신들 중에 불만 있는 한 신이 이 사실을 인간의 왕이며 사제인 지우수드라에게 알려주고 큰 배를 만들어 대피하라고 했다. 지우수드라는 배에 가족과 모든 생물의 종자를 싣고 7일간 폭우를 피했다가 배가 니시르산 꼭대기에 멈추자 6일을 더 있다가 7일째 비둘기와 제비를 날려보냈는데 되돌아 왔고 큰 까마귀를 날려 보냈더니 안 돌아와서 배에서 나와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행해진 고고학 발굴에서 이 홍수설화의 신빙성이 입증됐다. 유프라데스강의 하류에 있던 고대도시 우르에서 대홍수의 흔적인 두께 3미터의 점토층이 발견됐고 그 연대가 기원전 4000년 경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수메르의 홍수설화를 구약에서 말하는 노아의 홍수로 보고 있다.고대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는 홍수가 심했다. 그 홍수는 피할 수 없는 일이므로 신의 섭리로 보았고 홍수에서 살아남는 것을 신의 구원으로 보았다. 그만큼 홍수는 중대한 문제였다.

고대중국의 전설에서도 홍수 문제는 인류대사였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뒤를 이은 우임금은 원래 순임금의 신하였는데 치수에 성공한 공로로 임금이 된다. 백성들이 그의 공로를 흠모하여 자손대대로 왕에 추대하여 중국 전설시대의 세습왕조인 하왕조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홍수로 인한 재난에 대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해주는 전설이다.

그런데 홍수로 인한 재난은 고대에만 큰 문제가 아니라 과학문명이 최고도로 발달한 21세기에도 대단히 큰 문제로 드러났다. 지구상에서는 일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두번의 큰 물난리를 겪었다. 첫번째는 지난해 12월 26일 발생한 인도양의 쓰나미이고 두번째는 최근 뉴올리언스의 홍수이다. 두 사건이 모두 엄청난 피해를 준 사건이지만 주는 의미는 매우 다르다.
쓰나미는 바다속의 지진활동으로 인해 해일이 발생하여 인도양 주변지역을 무차별로 휩쓸었다. 이 지역에 쓰나미 경고 시스템이 갖추어졌더라면 인명 피해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 지역이 후진지역임을 감안할 때 어쩔 수 없었다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뉴올리언스의 경우는 좀 다르다. 허리케인으로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났는데 제방이 무너져 물이 들어오는 바람에 도시가 물에 잠겨버린 사건이기 때문이다.

물이 불어나서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튼튼히 쌓는 것은 수천년 전 고대에서도 치수의 기본이었는데 최고문명을 자랑하는 미국의 도시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것은 부끄럽기 한이 없는 일이다.뉴올리언스는 북쪽에 도시의 두배나 큰 호수가 있고 동쪽에는 미시시피강이 흐르고 있으며 도시의 70%가 해수면 보다 낮기 때문에 제방을 쌓아 물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방이 3급 허리케인의 홍수에 견딜 수 있는 정도밖에 안되고 구식 펌프밖에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정부는 제방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 지원을 연방정부에 요청하였으나 부시행정부가 이를 대폭 삭감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결국 4급 내지 5급 허리케인인 카트리나로 인해 엄청나게 불어난 물로 인해 미시시피강의 제방이 무너져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으니 이는 천재라기
보다 인재라고 할 수 있다.뉴올리언스의 재해는 미국사상 가장 큰 재해로 9.11 테러 보다도 피해가 클 것이라고 한다. 사망자가 1만명이 넘을 것으로 보이며 복구에 2,000억달러 이상이 들며 수년이 걸리게 될 것이라
고 하는데 물에 잠긴 도시에 환경오염까지 겹쳐 도시가 다시 살아날지도 의문이다. 결국 화려했던 큰 도시 하나가 폐허로 변모하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며 부국이고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우주정복을 바라본다고 하는데 제방 하나 똑바로 쌓지 못해 이와같은 참상을 당한 원인은 무엇일까. 국가의 운영이 인간중심에서 벗어나서 팽창위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위정자와 국민들이 9.11 테러와 이번 허리케인 재해를 보면서 미국을 더 안전하고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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