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삽니까?”

2005-09-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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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누가 나에게 “당신은 왜 삽니까?” 하고 물으면 속이 시원하게 대답해 줄 설명도, 해답도 없다. “그저 세상에 왔으니 죽을 때까지 살 뿐이다” 이 이상의 해답을 발견할 수가 없다.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보면 저 노인은 “왜 살까?” 하면서 딱하게 생각하고,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보면 “인생살이 고달픈 것 뿐인데 왜 살려고 버둥대느냐?” 하고 은연중 측은하게 생각한다.

왜 살까? 나이가 들수록 “다 지난 일인데 뭐…” 하고 있었던 일을 모두 털어버린다. 살아보니 세상살이에는 미움도 별 것 아니고 애착도 별 것 아니고 경쟁도 별 것 아니다. 희미한 옛 그림자, 아니면 쓰지 않고 모은 얼마 되지 않는 억지 재산이 인생의 의미이고 가치일까? 아니면 학위나 지위가 인생의 의미이고 가치일까? 이란 속담이 ‘수의에는 주머니 조차 없다는데’ 또한, 삶이 무엇이길래 왜 타국땅까지 와서 허겁지겁 살고 있을까?
좋다는 직업이나 우러러 보임직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돈을 많이 모은 사람들, 보란듯이 헛기침을 자주자주 하는 사람들, 공부를 참 많이 한 사람들, 그 사람들 머리 속도 이름없는 번민 때문에 허겁지겁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라면 니체의 철학적 인생의 허무가 답변인 듯도 하고, 까뮤의 시지프스 신화가 증명서인 듯도 하다.


“이 땅에는 왜 왔을까?” 솔직하게 들추어 보면 환경이 궁해서 아니면 생활이 궁해서 찾아온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환각 증세를 일으킨다. 망명자 하나 없는 우리 이민자들의 실정을 하나 하나 따지고 보면 이 땅은 궁한 자들의 집합소이고, 궁한 자들의 수용소인 것을… 하기야 환경이 가난한 자에게는 좋은 환경이 의미이고, 생활이 가난한 자에게는 돈이 가치일런지도 모르기에 이민을 왔겠지.하지만 이 세상 어디를 가나, 인생은 시간만 바라보며 처분을 기다린다. 인생의 본질은 무엇이며, 무엇이 인생의 가치이며 무엇이 인생의 의미인가? 불교에서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
래... 아니면 전생에서 지은 죄의 업보로 인생살이 고달픈 것을…” 하면서 전생을 이승살이 고해에 접목시킨다.

구멍가게를 겨우겨우 차려놓고 대부를 꿈꾸는 용감한 사람들이나, 평범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모르고 그저 특별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동 튼 오늘 하루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고 내일만 부르짖는 사람들, 푸른 잔디 위에서 또박또박 처 나가는 골프의 즐거움은 모르고, 최장타나 홀인원을 꿈꾸는 사람들, 믿는다는 행동은 남들에게 보이려는 화장품이고 구역장이 출세인 줄 아는 얼굴 두꺼운 사람들. 60대를 살면서 20대를 흉내내는 사람들,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살면서도 모였다 하면 아이들이 간판인 사람들, 과거가 자랑인 사람들 등등…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의미이고 가치일까?

젊어서야 모두 별일이 있고 별일이 꼭 일어날 것만 같아 동분서주하지만 나이들어 별일을 찾아보아도 별일이 생겨나지 않고, 결국 인생에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슨 대답이 나올까?
돌아가시기 얼마 전 미당 서정주 선생님은 “억울해! 억울해서 못살겠어” 하시면서 산다는 것을 신앙적으로 억울해 하시었다. 미당은 소련땅의 바이칼호를 찾아 왜 가셨을까?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보이는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내가 저기서 왔어! 내가 저기서 왔어!” 원초를 찾아가면서 비로소 하늘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던 미당, 왜 살까 하는 해답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잃어버리고 온 사람들. 그래서 끝에 가서는 해답을 찾으려고 저승길을 나서는지도 모른다.삶에 시달리다가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해답을 얻기 위하여 시작의 얼굴을 다시 찾아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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