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랑뜨레’의 계절

2005-09-02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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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8월중에 이미 입추(7일)와 말복(14일)과 처서(23일)가 들어있어 기승을 부리던 폭염도 이제 한풀 꺾이고 서서히 가을 냄새를 풍기고 있어 새벽녘이면 솜이불을 덮어야 할 지경이다.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선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9월을 ‘랑뜨레’의 계절이라 한다. ‘랑뜨레(Rentree)’란 ‘돌아간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학교의 새 학기가 9월부터 시작된다. 미국에서도 신학기가 9월에 시작되기 때문에 8월 중순부터 상가에서는 ‘Back to School Sale’이라는 광고문을 내어 걸고서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파느라 대목을 노린다. 돌아가는 일에 있어서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다. 긴 여름휴가를 끝내고 집으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계절이다. 누구에게 있어서나 9월은 현실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인간이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능력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조물주는 인간으로 하여금 일주일에 6일 동안만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마련하였던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인간은 쉼을 통하여 다음에 일할 저력을 보충하게 됨으로써 일을 효율적으로 계속할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휴가란 현실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 있다고 본다. 일상적으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현실로부터 해방되어 심신을 달래어 쉬게 하는 비현실의 시간이 휴가기간이라고 본다.


베케이션이 마냥 즐거운 것도, 그리고 휴가가 끝난다는 것이 아쉬운 것도 사실이지만 인간은 끝없이 휴가만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허구헌 날 비현실의 세계 속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인생살이인 것이다.
누구나 예외없이 9월이 되면 현실로부터 유리(遊離)된 로맨스로부터 일상적인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인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처럼 가난한 사람은 없다고 본다. 그렇다 해도 꿈만 먹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이 꿈을 키우고, 또 꿈이 현실을 기름지게 하는 이치를 휴가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이제 9월이다. ‘랑뜨레’의 계절이란 말이다. 이제 꿈에서부터 깨어나 현실세계로 빨리 돌아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베케이션 시즌은 이제 끝난 것이다.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건전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물론 휴가중에 키운 꿈을 그냥 내버려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꿈은 그런대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현실생활 어느 구석엔가에 7,8월의 자연과 함께 부풀었던 꿈의 입김이 살아남아 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고되고 힘든 일상생활 속에서 꿈을 키워가는 한가닥 소망이 우리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할 것이기에 부푼 가슴을 안고서 능동적으로 일터로 돌아가기 바라는 것이다. 힘써 일한 사람에게만 휴가는 양약과 같아서 효력을 발생하게 될 것이다. 쉬면서 저축한 힘과 정력을 주어진 일터에서 십이분 발휘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9월이 시작되자 곧바로 ‘노동절(Labor Day, 9월 5일)’이 있는 것의 의미를 실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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