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친구 딸의 결혼식에 다녀와서

2005-08-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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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얼마 전 친구 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처음 미국에 발을 내려 1년 동안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서 살았다. 그 때 친구 세 명을 사귀었다. 1년간 그 곳에 머물다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 후 두 친구가 뉴욕에 와 정착했다. 한 명은 뉴욕으로 오지 않고 프로비던스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25년 전 일이다. 그 때 한 친구의 딸과 나의 딸은 같은 동갑나기로 그 친구 딸은 5월생이고 내 딸은 3월생이었다. 그 친구는 뉴욕으로 와 사업에 성공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의 딸은 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이번에 동갑나기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과는 열다섯 살에 만나 10년을 사귀었다고 한다.

결혼식과 피로연에서 부부가 된 친구의 딸과 또 동갑나기 남편은 연신 싱글벙글하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스물다섯이라면 작은 나이도 아니고 많은 나이도 아니다. 둘 다 직장이 있어서 독립하여 살 수 있으니 아주 적합한 나이에 결혼했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이 그렇게도 좋은지. 앞으로 아이들 낳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원해 주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내가 결혼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내가 내 딸의 결혼을 걱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친구의 딸 결혼식을 보면서 그 친구의 희끗 희끗한 머리와 나의 흰 머리를 서로 보며 세월이 무상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붙잡지 않아도 잘만 가는 세월 속에서 어느덧 인생은 늙어 가나보다.


친구는 얼마 안 있어 딸이 아기를 낳으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것이다. 불과 앞으로 1년 사이에 그렇게 될 것이다. 새파랗게 젊어 결혼한다고 마음 설레던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가고 자식들 결혼에 신경을 쓰고 그들이 낳은 아기들을 돌보아야 하는 시절이 돌아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과 친구들이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치 않을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나는 것 같다. 자신은 항상 열여덟 청춘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기에 가끔 객기도 나오고 젊은이들과 어울릴 때는 그들과 똑같이 놀아도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제 아무리 장사라도 자기 나이를 이길 장사는 없기에 그렇다. 자신이 늙어감을 가장 가깝게 깨달을 수 있는 길은 자식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볼 때일 것이다.

나도 얼마 안 있으면 두 딸을 시집보내야 한다. 시집갈 나이가 된 큰 딸은 아직은 결혼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항상 마음의 준비는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그 준비란, 딸을 남의 자식에게 보내어도 섭섭하지 않을 그런 마음의 자세 말이다. 올해는 유난히도 결혼식에 많이 참석하는 것 같다. 같은 직장 내에서만도 세 건의 결혼식이 있었다. 또 결혼식 청첩장을 두 건이나 받아 놓고 있다. 봄부터 다녀왔던 결혼식과 지난 친구 딸
의 결혼식까지 그리고 아직 남은 금년 가을과 겨울에 혹이나 있을 결혼식까지 합치면 올해 결혼식 참석은 열 군데는 될 것 같다.

경조사 중 결혼식만큼 좋은 경조사는 없다. 두 젊은 남녀가 새로운 가정을 꾸며 힘차게 세상을 향해 나가는 그 일이야 말로 축하해주고 기뻐해주어야 할 날이기에 그렇다. 가능한 결혼식 청첩에는 빠지지 말고 찾아가 그 가족들과의 기쁨에 함께 동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형편과 시간이 맞지 않아 결혼식에 참석 못할 때도 있다. 이럴 때에는 청첩장을 보낸 상대방에게 충분히 양해를 구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함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괜한 일로 서로 오해를 사, 사이가 서먹서먹해진다면 안 좋기에 그렇다. 사전 참석여부를 알려달라는 편지를 받았다면 그 편지를 반송해야할 날에 맞추어 회답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은 예의다.

친구 딸의 결혼을 보면서 내 딸도 머지않아 저렇게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것을 실감하며 스스로 애비의 역할을 잘해 왔는지 자문자답을 해본다. 점수로 따지면 50점정도 될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애비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무상하게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사람은 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또 그 아이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며 늙어간다. 그 늙음 속에 피어있는 세월의 냄새를 맡으면서 한 세대는 지나고 새 세대가 다가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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