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어와 넋두리

2005-08-2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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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홍(목사/시인)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언어는 필수품이었다. 생필품이 부족할 때 삶이 궁색해진다. 삶이 궁색해지면 스트레스가 쌓인다.본인이 신학을 시작하면서 영어 강의시간에 교수가 ‘영어는 문동환 박사도 안된다’고 첫 시간에 넋두리 하셨다. 문동환 박사가 누군가?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그 뿐 아니라 아름다운 미국인(美國人)하고 결혼하여 아이들까지 두고 있지 않는가?

깊은 꿈에서 깬 느낌이었다. 그 후에도 미국에 와야 된다는 숙명같은 것 때문에 영어를 쫓아다녀야 했다. 한국에 있는 미8군을 끼웃거리며 귀동냥을 해보기도 하고 본인 신앙과 노선이 다른 말일 성도 미국인들을 불러들여 몇 마디 주어 듣기도 했다. 유학이랍시고 26년 전에 이곳 미국에 왔다.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했는데 영어가 전연 들어오지 않는다. 한 명문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찾아와 영어가 어렵다고 하소연 했더니 그가 하는 말, 한번은 강의시간에 강의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기만 달랑 앉아 3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오더란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곳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만나기로 했단다. 이 친구 한국에서 통역장교로 예편했으니 망정이지...


어쩌다 보니 미국에서 대학원을 세 개나 끼웃거리게 되었다. 그 때마다 속 터지는 것은 영어다. 지금은 한국 교육개발원 원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서울 사대 교수로 있을 때 집에 며칠 머물면서 뉴욕 퀸즈에 있는 바닷가에서 아내와 같이 바람을 쐬러 갔는데 갑자기 나에게 “어이 김목사, 미국에 오래 사니까 내가 하는 말 번역 좀 해봐 ‘물레방아 돌고 돌아’ 이 친구 이곳 미국에서 박사 받느라 고생 꽤나 했군” 두 사람이 히죽 웃었다.

그 후 목사로 일하며 미국인들을 목회하게 되었다. 딴 것은 몰라도 장례예배 드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람이 죽으면 Die면 되지 왜 Pass away인가?인도의 시성(詩聖) 타골이 영어권에서 자라고 영국 유학까지 다녀왔어도 그의 영어가 자신이 없어 선교사에게 자기 시를 보였는데 4군데를 고쳐주어 그것을 영국의 유명한 시인 예이츠에게 보이니 그 4군데를 다시 고쳐주어 노벨상을 받았다. 물론 시상(詩想)도 어렵지만 영어가 그렇게
까다롭다는 뜻일게다.

어떤 사람이 ‘영어는 세번 우리를 울린다’고. 첫번째는 상대방의 말을 내가 못 알아들어 울고, 다음은 내 말을 상대방이 못 알아들어 울고, 세번째는 깊은 대화를 못해서 운다 했다. 이제 영어 때문에 그만 울고 영어로 햄버거나 주문해 먹으면 자족하고 살아야 할까 보다.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질 이 놈의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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