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가나안 동네의 한 노인

2005-08-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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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커네티컷주의 새 가나안 마을을 비스듬히 비켜 질러가는 스미스 산등성 아래에 보면 기차 종착역이 있다. 뉴욕에서 오는 뉴헤븐 라인의 지선이 스탬포드에서 갈라져 나온 후 달맞이란 작은 역사를 지 새 가나안에 오면 더 이상 가기를 끝낸다. 기차 지선의 시골 종착역, 기차길이란 끝없이 뻗어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 작은 마을에 와서 끊겨져 있는 철로, 사람의 생명도 끝이 없을 줄 알고 살고 있는데 날이 갈수록 부고장의 숫자가 느는 것을 보면 사람 목숨에도 끝이 있고 종착역이 있다. 종착역이나 죽음 자체가 슬픈 것이 아니라 끝을 보면 오히려 아련하다. 아니, 오히려 맑게 슬퍼진다.
새 가나안 동네의 이 병원은 은근히 유명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유명한 여배우라던가 미국의 팝 음악계를 들썩거리게 했던 마이클 잭슨 등 이름만 들어도 흥분이 되는 유명한 사람들이 곧잘 입원을 했다가 가는 병원이기에 상류층에서는 꽤나 알려진 병원이다.

이 병원 앞뜰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침 아홉시의 코스모스 꽃처럼 아련히 밝은 얼굴들이 미소를 흔들며 열두시 정각을 향하여 모여들고 있었다. 이 마을에 발을 딛고 살아온 평범한 한 노인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백만달러를 이 병원에 기증하는 날이다.무엇이 이 노인을 감사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 노인을 향하여 따스한 마음을 던지며 많은 사람들이 눈길 모아 모여들게 했을까? 그것은 일년 전에 있었던 부인의 죽엄이었다. 그것도 평범하게 살다 간, 아주 평범한 한 노파의 죽엄이었다. 아주 평범한 삶의 끝, 허전한 마음으로 종착역을 빠져나오는 한 승객을 이 병원의 몇몇 직원과 남편이 슬픔을 삭이면서 작별의 손을 흔들어 주었던 것이다.


별반 특별한 것도 없이 남들이 다 그러하듯 평범하게 살아온 부인이 인생선로 끊어지는 종착역으로 누워있던 이 병원의 창백한 병실, 부인의 손을 잡고 노인은 울었지만 노환 다스릴 명약도 세상은 없거니와 늙어서 떠나가는 발길 붙잡을 수 있는 핑계꺼리도 세상에는 없다. 북극에서 들랑달랑하는 오로라의 서광, 보이는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고 뜨는 듯 하면서도 뜨지 못하다가 사라지는 오로라의 찬란하기도 하고 어둡기도 한 서광처럼, 명확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명확하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는 동행인, 부부라는 관계가 어찌 보면 다 그러한 것이겠지.

더 밝고 더 따뜻한 것을 상대에게 퍼다 주고 싶어도 마음으로만 치솟는 남녀의 근본 이데올로기, 인간으로 태어난 죄로 더 이상 펴볼 화문석 꽃돗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평범하라! 평범한 것을 아는 사람은 위대한 관념 보다 결실이 아름답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위대함을 꿈꾸며 사는 사람 보다도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행실이 뚜렷하다.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살 조건을 갖추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같이 살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던 사람이 같이 살 조건을 맞추어가면서 닮아가는 사람들, 부부인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특별한 것을 바라면서 출근하던 사람들이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아온 한 시골 노인을 보려고 모여든다. 감동 없는 일상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특별한 것에는 화려한 행사가 무겁게 상을 차리지만 평범한 것에는 감동이 파장을 일으킨다. 감동을 안고 다시 일어나고 싶은 사람들, 특별한 것에서 탈출하고 싶은 복잡한 사람들이 평범한 단선의 철로가 벌판을 가로질러 산야를 넘고 강을 건넌 한 노인에게 평범을 배우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얼떨결에 섞여든 나는, 뜨지 못하고 비껴가는 인생의 한정된 오로라 빛이 새삼 아름답다는 것을 배운다. 천일의 앤꽃처럼 애잔한 노인의 미소, 백만달러의 지폐가 환한 꽃이 되는 새 가나안 시골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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