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平’자가 들어있는 말들

2005-08-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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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바다의 수면이 평평하다. 바다 밑바닥의 높낮음을 하나로 가려버린다. 이처럼 다양한 우리 사회를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말들이 있다.
그 말 중에서 평(平)자가 붙는 것들을 찾아 본다. 우선 ‘평일’은 보통날이다. ‘평년’은 윤년이 아닌 365일의 일년을 가리킨다. ‘평복’은 특별히 차려입지 않는 평상시의 옷이다. ‘평지’는 울퉁불퉁하지 않은 평평한 땅이다. ‘평사원’은 특별한 직책을 맡지 않은 보통 회사원이다.

하지만 ‘평균’이란 말이 주는 느낌은 여러 가지다. 크고 작음이나, 많고 적음의 차이가 나지 않도록 고르게 한 중간의 값을 알려주는 이 말에는 여운이 따른다. 평균을 기준으로 한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과연 ‘평균인’인가 아닌가. 평균인이란 사회의 여러 요소들을 통계학적으로 처리하여 평균적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한 가상적 인물이지만.한국인의 평균적인 남녀 얼굴이 알려졌다. 이들과 비교한 자신의 얼굴은 어떤가 견주어 보게 된다. 미국인의 평균 연수입이 알려졌다. 거기에는 한국계 미국인의 연수입이 포함되었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수입과 대조해 보게 된다.‘평등’에 이르러서는 너나 나나 보통 때보다 예민해진다. 누구에게나 치우침이 없이 모두가 한결같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기대고 있는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다. 각종 사회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 법률을 금과옥조로 알고 있다.


‘평준’은 사물을 균등하도록 조정한다는 뜻이다. 한국 내에서 장기간 교육의 평준화 정책을 펴고 있어서 한국 내외의 관심이 고조되지만 끈질기게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는 무엇의 평준화인가를 명확히 해야 하겠다. 학생의 능력 평준화인가, 아니면 교육 기회의 평준화인가.평준화란 말은 아름답지만 마치 신기루 같다. 교육 기회의 평준화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능력 평준화에는 의문이 따른다.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능력의 범주이다. 지식·기능·체능 등이 골고루 동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교육에서는 일반적으로 동질의 학생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것이, 이질의 학생을 합쳐서 가르치는 것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열반이 구성되고 그룹 활동이 활발하다. 여기서 주목할 일은 일반적인 미국인이 자녀가 우수반에 편입되지 않았다고 불평을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녀들이 각자의 성장 속도에 따라 자라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느긋하게 자녀의 개성 발달을 지켜보고 있는 줄 안다. 그들은 아마 ‘평준화’를 표방하는 교육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평화’라는 말처럼 만인이 희구하는 가치는 드물다. 즉 전쟁이 없는 세상의 평온함을 누리고 싶은데, 세계는 크고 작은 전쟁의 연속이다. 60억이 넘는 인구가 같이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평화이다. 옛부터 ‘수신·제가·평천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온 천하를 편안하게 만드는 정치가는 어디에 숨어있나.이렇게 ‘평’자가 드는 말들이 마음에 잔잔한 느낌을 주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 바람도 있다. 바로 평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개성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자신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자녀들도 그렇게 교육하고 싶은 부모의 희망이 있다. 그러나 가끔 개성적인 것이 엉뚱한 짓과 혼동되는 경우를 본다.

일반 학문의 발달에서 기초지식을 중요시하는 것처럼, 예의 범절교육에서 기본 예의를 바탕으로 삼는 것처럼, 과학교육에서 기초과학의 훈련을 쌓는 것처럼, 예·체능교육에서 기본동작을 반복하는 것처럼, 창의력 개발이나 개성적인 발달도 평범한 일상생활이 기반일 수 밖에 없다.말하자면 맨처음 한 번 틀 속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틀 밖으로 튀어나오는 힘이 개성적인 역량이고 거기서 창의력의 배아가 싹튼다. 그래서 언제나 평일처럼 평상심을 가지고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이 권태롭고 무의미하지 않다. 도리어 감사할 일이고 자기 비약의 토양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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