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명의사록 편찬’ 유감

2005-08-2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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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영(심장내과 전문의)

막내가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아직 들어가기도 전의 일이다. ‘유명인사 인명록 회사’에서 이 아이를 등재시키겠다는 제안이 왔다. 뭐 이제 갓 고교를 졸업한 학생이 유명하면 얼마나 유명하고 업적을 세웠으면 얼마나 세웠겠는가. 결국 이름을 올리고 출판비를 뜯어내겠다는 속셈
이 보인다.귀가 솔깃해하는 아이를 꾸짖고 보내온 용지를 찢어버렸다.
이런 일이란 동네 골프대회에서 ‘홀인원 했다’고 동네 신문에 기사를 내보내고 촌지를 슬쩍 받아 챙기는 행위와 비슷하다.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유명인사록’에 등재하고 돈 내는 행위와는 무관하다. 돈을 내고
감투를 사는 것과 비슷하여 오히려 얼굴 따가워질 일이다.

유명록이 왜 그리 많이도 출판되는가. 금년들어 무슨 상조회, 무슨 협회, 무슨 협동조합, 재미 의사협회 등 무수한 단체들이 유명 인사록을 편찬 준비 중이다. ‘유명하다’는 것이 참으로 허무맹랑한 단어다. 그런 책을 출판했을 때 몇 사람이나 그 책을 읽어볼지도 의문이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쓸데없이 아까운 종이나 버리지 않을까. 이런 것들 때문에 더 많은 회원들이 상처나 받지 않을까. 이들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를 항상 궁금해 왔다.그런데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었다. 유명 의사 인명록 편찬작업에 인명을 추천하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결과는 난 유명인사록 편찬 자체를 적극 반대하는 편이 되었다. 각 ‘의과대학별로 10% 가량 뽑아서 유명인사록에 등재하고 대학별로 그 출판 비용을 분담하자’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할 수 없었다.


의사라면 누구나 그 어려운 의대 과정을 거쳤고 전문의 과정, 그 고난에 찬 시험들을 헤치고 올라왔다. 그 어려운 고비마다 누가 도와준 것도 아니고, 무수한 날들을 밤잠을 못 자고 청춘을 희생하면서 이루었는데 감히 누구 마음대로 이들을 빼내 내칠 수 있다는 것인가.조금 이 시점에서 몇 발 앞서 갔다고 명의사로 등재시키고 누구는 조금 늦게 출잘했다고 해서 내친다면 뒤에 남은 90퍼센트나 되는 의사들은 날벼락을 맞게 되고 갑자기 이등짜리 의사로 전락될 것이다.다른 의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200여통의 설문지를 의사들에게 보냈다. 돌아온 전부가 이 ‘유명인사 인명록’ 출판에 반대하였다.

청, 홍, 백색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 비교가 될 수 없고, 비교를 한다는 것 조차 무의미하다. 전공이 다르고, 햇수가 다른 의사를 특별한 기준이 없이 선정 발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유명 의사록은 이런식으로 편찬되는 것이 아니다. 노벨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의과대학에서도 졸업생 중 ‘10퍼센트를 뽑아서 유명의사록’을 출판하지도, 출판을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란 잘 생각해서 처리할 사안이다. 몇 사람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나설 일이 아니다. 정말 편집 발행하고 싶거든 의사회 전체 회원에게 설문지를 돌려 ‘10퍼센트만 뽑아 유명의사’로 포장 발표하자는 안건에 동의를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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