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브롱스 식물원의 민간외교

2005-08-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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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취재1부 부장대우)

핏줄은 속일 수 없나보다.서양 악기와 음악을 배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노력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장구, 징, 북, 꽹과리 등 한국 전통악기의 소리가 더 정겨워졌다. 얼굴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
이 한국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지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풍물 소리는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준다.지난 6일 브롱스 뉴욕식물원에 울려 퍼진 풍물놀이의 소리는 그 어느 연주보다도 가슴을 뜨겁
게 해줬다. 짙은 녹음 속에서 햇빛을 받으며 정원을 돌며 펼쳐진 이날 한국 소리에 미국인들도 깊은 관심을 갖고 신명나게 어깨를 들썩이며 연주를 감상했다. 전문 풍물놀이단이 아닌 럿거스 대학생들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나름대로의 노력한 모습이 보였으며 특히 그 특유의 젊음으로
힘찬 연주를 선보였다.

이날 연주는 뉴욕식물원 루스리 하월 패밀리 가든에 조성된 한국정원 자원봉사자들의 초청으로 이뤄졌다.이 자원봉사자들은 바쁜 이민 생활 중에서도 시간을 내어 한국 정원을 지키기 위해 땅을 갈고 식물을 가꾸고 있다. 또 이날 열린 행사를 위해 개인의 주머닛돈을 털어내고 주위에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 소식을 접한 한인들은 또 반갑게 음식으로, 홍보자료로 그리고 금전으로 지원했다.


순수하게 자원한 클레어 강 꽃꽂이 전문가는 아름다운 꽃을 3박스나 직접 구입해와 꽃꽂이 법을 소개하고 또 참가자들에게 풍부한 꽃을 나눠주며 꽃꽂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꽃 전문집에서나 구할 수 있는 비싼 꽃을 가져온 그녀는 “종교단체에 헌금을 내는 것만큼 이런 일을 서로 도와가며 꾸려가는 것도 아름다운 기금이 아니냐”며 눈을 찡긋했다. 이날 참가한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이런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이날 행사는 한국을 홍보하는데 성공했다. 뉴욕식물원 관계자들도 놀랐으며 참석자들도 한인들의 적극적인 모습과 봉사정신에 감동했다.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한국 문화를 홍보하고 더구나 독도가 한국 영토를 알리는 전단지와 한국문화 안내지, 한국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는 사진 등 미국인들이 이런 자료를 자연속에서 접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그나마 자원봉사자의 연락으로 뉴욕한국 문화원이 홍보지를 보냈다고 했지만 이날 행사에는 한인사회 어느 단체장도, 한국 기관 홍보관계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브롱스의 뉴욕식물원이라면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그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규모를 인정해주는 그런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민간 한인들이 이렇게 소리없이 뒤에서 자신의 땀과 시간과 돈까지 들이면서 한국을 알리는 일에 주력하는 것은 한국인의 핏줄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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