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한국에 미친바람이 불고 있다

2005-08-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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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일제에서 해방될 즈음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 구도로 양분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발로 나온 공산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후 세계 각지에서 피압박 민족의 민족주의 반체제 운동과 결합하여 세력을 확대했다. 이 공산주의는 우리의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에도 파고들어 해방 후 한반도에는 공산주의가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소련군의 점령지인 북한은 공산당 일색으로 변한 반면 미군의 점령지인 남한에서는 공산주의가 타격을 받고 사라졌다. 그리하여 남한에는 1948년 8월 15일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북한에는 같은 해 9월 9일에 공산주의 국가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각각 수립되어 우리 민족이 2개의 나라로 분단되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됐다.

세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쟁속에 휘말려 들면서 한반도에도 남북의 경쟁시대가 시작됐다. 경쟁은 우선 군사력 충돌로 나타나 처참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했다. 무력충돌로 결판이 나지 않은 가운데 남북은 국력 신장을 위한 경제적 경쟁시대로 돌입했다.남한은 자유당 시대에는 전후 복구에 급급한 정도로 경제건설에 엄두도 못 냈으나 5.16 이후 1962년, 1967년, 1972년, 1977년 등 4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선진산업국으로 탈바꿈 했다. 북한도 1961년 제 1차 7개년 계획, 1971년 6개년 계획, 1978년과 1987년에 각각 제 2차 및 3차 7개년 계획으로 경제발전에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남한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있는 반면 북한은 식량 조차 부족하여 수백만명이 굶어죽을 위기에서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 하는 빈국으로 전락했다. 남북한의 국력을 비교해 보면 국토는 북한이 한반도의 55%로 남한 보다 넓지만 인구는 남한이 북한의 2배가 넘는다. 경제력에서는 남한의 국민총생산이 약 6,000억달러로 184억달러인 북한의 30배가 넘는다. 국민 1인당 소득도 남한은 1만달러가 넘어 818달러로 추산되는 북한의 10배가 넘는다. 남한은 북한 보다 수출이 350배, 수입이 180배나 많으니 북한은 남한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각각 채택한 남북한의 체제 경쟁에서 남한은 완승을 거둔 것과 마찬가지이니 이는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한 셈이다. 공산주의 체제는 일부 권력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을 못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마저 크게 희생시키고 있으니 체제 치고는 최악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이런 체제 경쟁의 결과는 남북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입증되었다. 공산주의의 원조인 소련이 79년만에 공산주의를 포기했고 소련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공산주의 원조를 자처하던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를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다.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켜 가면서 뒤늦게 공산주의를 성취한 월남은 어떠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본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체제 경쟁의 승리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남한에서는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지난 광복절은 남한의 광복절 경축이 아니라 북한사람이 온 남한을 휘젓고 다닌 광복절이었다. 남한의 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한 인상이었고 철부지 언론이나 국민들도 온통 부화뇌동을 했다. 북한이 남한에 부화뇌동을 해야 할 판인데 왜 남한이 북한에 부화뇌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한국에서 좌익이나 친북세력이 기세를 올리는 이유는 있다. 과거 오랜 기간에 걸쳐 독재시대에 핍박받던 사람들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밀려난 계층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마치 러시아의 제정시대에 탄압받던 공산혁명 엘리트들이 쯔아의 압제로 가난에 시달리던 민중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은 것과 흡사하다. 그러므로 이들은 과거를 부정한다. 반공이 친공으로, 반북이 친북으로, 친미가 반미로 바뀌어 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제 정신이라면 나쁜 것은 버리더라도 좋은 것은 간직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갈기 갈기 찢어놓고 과거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는 지금 이런 미친 바람이 불고 있는데 북한이 이 바람에 부채질이나 하듯 자주통일 운운하면서 반미를 선동하고 있다.

이번 광복절을 보면서 한국은 막강한 경제력으로 덩치는 커졌지만 얼이 빠져나간 저능아이거나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치광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진정한 정치 지도자, 경제지도자, 사회지도자가 있다면 이런 사태를 앉아서 보고만 있을 것인가. 한국에 진정한 언론이 있고 지식인이 있다면 어찌 이런 광풍을 막으려고 하지 않는가. 한국에 불고있는 이 미친바람을 잠재울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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