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극기여 영원하라

2005-08-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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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완(뉴저지한인회 조은학교장)

해방 60돌을 맞은 올해 8.15는 다른 그 어느 해 보다도 감회가 새롭다.
내 나이 육십 평생의 고비를 넘기는 석양에서 맞는 8.15다. 어쩌면 이 육십의 숫자를 황혼기에서라도 평생 붙잡고 싶은 심정은 인생의 헛된 욕심일까?몇년도에 해방됐는지도 잘 기억 못하고 살아왔지만 올해는 유독 60주년을 맞는 여러 기사들이 매스컴을 장식하는 덕에 그 의미를 더하는 것만 같다.

60년 전, 나는 당시 국민(초등)학교 3학년 만 9살 때였다. 일본어를 거의 터득한 시기다. 그러나 해방이 뭔지, 독립이 뭔지 조차 알 수 없던 시기였지만 아직도 머리에 생생히 남는 기억이 있다.1945년 8월 15일!이날 정오 우리 삼촌이 골방에서 뉴스를 듣고 환성을 올리며 뛰어나오던 모습!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많은 동리 주민들과 만세를 목이 터져라 하고 만세를 부르던 생생한 그 모습! 지금 나의 머리엔 스크린처럼 떠오른다.나에게 한 분 밖에 없는 삼촌은 당시 18살. 일본의 징병에 끌려갈 운명에서 밖에도 잘 나가지 않은 채 매일 숨을 죽이며 하루 하루를 연명하다시피 보내던 터였다.


우리집은 시골 면소재지였다. 그래도 윗부분이 둥글게 나무로 짜여진 터널 입구 모양의 라디오가 있었다. 매일 골방에 숨다시피 하면서 음파상태도 고르지 못해 ‘짖-직~’ 소리를 내던 라디오였지만 우리 삼촌에겐 최고의 보물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서 일본 천황이 항복했다는 뉴스를 우리 면에서 맨 먼저 접했으니 말이다.5년여 전 미국에 온 이민온 나는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잠에서 깨어 우리집 근방 나무가 많은 공원을 걷는게 습관화 되어 있다. 이 공원은 뉴저지 포트리에 있는 Freedom Park(자유의 공원)이다.

220여년 전 해군을 자랑하던 영국군이 맨하탄과 이곳을 가로지르는 허드슨강에 수만의 대군을 이끌고 왔을 때 조지 워싱턴 브릿지 옆 요새에서 리장군이 이들을 물리쳤다 하여 지금의 포트 리(요새와 장군의 이름)라고 한다.이런 전쟁사의 고창으로도 유명한 이 지방엔 많은 우리 교포들이 살아가며 미국의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맨하탄과 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공원에는 1년 전 6.25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우뚝 세워졌다. 공원 한복판 대로변에.이곳 시당국의 협조와 한인들의 성의로 뒤늦게나마 세워진 기념비는 3만5,000여명의 당시 한국전에서 희생된 미군을 추모하면서 이 고장에서도 자유를 위해 참전한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함이리라.

여기에는 토끼 모양의 우리나라 지도를 탑으로 하여 양쪽에 성조기와 태극기가 우뚝 서 휘날리며 매일 이곳을 산책하는 뭇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면에 서있는 베트남 참전기념비에는 성조기만이 의롭게 펄럭이고 있으니 나라가 망한 그 설움은 여기에서도 역력히 드러나면서 먼 훗날이 되면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잊혀져버리는 존재가 될 것만 같다.한국에서 요즘 태극기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아침마다 반겨주던 이 태극기는 몇십년만에 가장 무더운 올해도 더위를 타지 않고 굳굳히 우리 동포들을 지켜주는 지주목 역할을 하고 있다.태극기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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