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계(relationship) 에 접속하기

2005-08-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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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뉴욕 가정상담소 카운셀러)

몇해 전 한국에서 상영된 영화 ‘접속’은 때마침 시작된 인터넷의 전국적인 보급과 맞물려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 ‘접속’은 서로 모르는 남녀가 이메일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만남을 갖게 됐고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만남의 동기가 된 것이 이메일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으며, 이 점이 당시 컴퓨터가 일상이 되어가던 젊은 층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 중
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간적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컴퓨터라는 기계가 두 사람의 관계(relationship)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어린이 프로그램 중 하나인 텍톡(Tech-Talk;Technology Talking)은 이러한 컴퓨터의 긍정적인 측면을 이용해서 아이들의 생각과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도록 돕고 나아가서는 사람 사이의 건강하고 폭 넓은 관계를 형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은 컴퓨터의 기초인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와 기본적인 인터넷 서칭을 배우고, 그 기초지식을 바탕으로 주어진 개인 및 그룹과제를 수행한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필자가 발견한 것은 아이들이 컴퓨터를 극히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에게 컴퓨터는 주로 게임을 하는데 이용되어지고 있었고, 따라서 아이들의 능동적인 참여 보다는 수동적인 자세를 강화시키고 있었다.처음 아이들이 텍톡 프로그램에서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아마도 그들은 그것을 기대했었던 것 같았다). 필자가 대면한 것은 그들의 실망감과 거부감이었다. 아이들은 “재미없어요”, “안 할래요” 혹은 “게임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필자가 제시하는 과제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가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즐기기 시작했고, 필자의 격려와 그룹 내의 관심에 자신들이 해낸 것에 대해 뿌듯해 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몇몇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기도 했다.

필자가 텍톡에서 만난 7살짜리 남자아이는 약 반년 전 한국에서 온 아이로, 영어가 많이 부족한 상태에 있었다. 아이는 대단히 창의적이고 명랑했지만 낯선 언어와 문화 안에서 아이가 직면한 두려움과 상대적인 열등감은 아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였다.아이들은 주로 인터넷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이미지들을 선택해서 그것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곤 했는데 이 아이는 늘 호랑이를 선택했다. 주어진 주제가 호랑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때에도 아이는 호랑이를 선택하곤 했다. 필자는 아이의 이러한 행동을 아이의 문제 해결의 한 방법으로 이해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불안감과 열등감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용기와 힘의 상징인 호랑이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룹 내의 다른 아이들은 이 아이의 호랑이를 좋아했고, 아이들의 관심을 느낀 이 아이는 더 적극적으로 모든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영화 ‘접속’으로 돌아가 보자. 왜 ‘접속’일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무엇에 ‘접속’한 것일까? 필자는 그들이 관계에 접속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필자와 만난 아이들 또한 컴퓨터를 통해 서로에게 접속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비록 컴퓨터 자체는 대단히 비인간적이고 단지 기계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더욱 인
간답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컴퓨터를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에 접속하는 것, 이것이 그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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