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광복 60돌

2005-08-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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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올해로써 광복절이 회갑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억겁의 시간이 흐른다 해도 절대로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도 안되는 일이 있다. 1910년 치욕적인 한일합방 이후 1945년 8월 15일에 이르기까지 36년간의 우리민족의 수난사는 세월이 약일 수가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의 생각을 60년 이전으로 되돌려 그날에 벌어졌던 일들을 회상해 보자.그 날, 우리는 어설프게 손으로 그려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목이 메었지. 옷고름을 풀어헤치고 가슴을 펴고 저마다 목이 터지도록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지. 36년 동안 목이 타서 죽을 뻔했던 사람이 냉수를 들이켰듯이 우리는 생기를 되찾아 속이 후련했었지. 만세 소리가 그 때처
럼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였음을 우리는 처음 경험했었지.


이불 속에서 웅얼거리며 배워두었던 애국가를 길거리에 뛰쳐나가 목이 쉬도록 불러댔었지. 저마다 소프라노처럼 테너처럼 고성으로 부르다가 목이 쉬어버렸지. 하늘의 흰구름도 걸음을 멈추고 그 합창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 천지가 진동하는 새 역사의 장이 펼쳐지는 그 날이었지.죽지 못해 창씨 개명하여 가네다상, 마쯔무라상이란 이름이 쑥스럽기만 했는데 이제 훌훌 다 팽개쳐 버리고 본래의 이름 김서방, 이서방으로 주인을 찾았지. 내 나라 어느 땅이든 내 마음대로 오갈 수 있고, 우리 말로 자유롭게 말하고 노래도 불렀지. 삼천리 강산을 쾅쾅 디디면서 뒹굴면서 활개치며 다닐 수 있어 사람들은 어깨춤을 추었지.

그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언 60년이라! 인생의 한 텀(term)인 육십갑자가 지나간 것이다. 다시 그 날이 되돌아와 태극기를 흔들어도, 우리말로 만세를 외쳐도, 가슴은 뛰지 않고, 팔다리에 힘이 솟구치지 않으며, 목청의 울림은 그 때의 낭랑함이 아니다. 어제의 진흙길엔 아스팔트와 시멘트가 덮히고, 달구지 바퀴에는 녹이 슬어 한구석에 쳐박혀 있고, 굼벵이가 잠자던 초가지붕은 슬레이트와 콩크리트로 바뀌었는데 아직도 햇볕이 닿지 않는 그 여전한 우물이 있거늘...

그것은 우리 고유의 마음이요, 머리요, 생각들인 것을. 그 뜨거운 피도, 냉랭했던 머리도, 그리고 단단했던 의지도 한 조각 구름처럼 흐지부지 사라지고 말았단 말인가! 겨우 60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미움인지 사랑인지 물에 물탄 듯 흐리멍텅한 가운데 이웃집 사이에 높은 담을 쌓
고, 낯선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인상을 쓰니 손에 손을 잡고 어깨춤을 추던 벗들은, 그 많은 벗들은 다 어디에 갔단 말인가.무명옷처럼 부드럽고 구수하던 인정은 어느새 시퍼런 날이 서고 절벽이 되었구나! 이제 겨우 60년이 지났을 뿐인데 어찌 그날의 감격이 이렇게도 무디어지고 말았단 말인가!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5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해방이 된 날을 ‘유월절(passover)’이라 하여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날이 되면 딱딱한 빵과 쓴 나물을 식탁에 올려 지난날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자녀들에게 해마다 들려줌으로써 자유의 소중함을 간직하게 하며, 미국에 있어서도 7월 4일 독립기념일을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도 국가 최대의 기념일로 지키면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 패트릭 헨리의 말을 자자손손 되새겨주고 있는데 광복 60년을 맞은 우리의 꼴이 이게 뭐란 말인가?마지못해 정부의 삼부 요인들이 모여 적당히 요식행위처럼 기념행사나 치루고 시민들에게 고궁 무료 입장의 특혜나 베푸는 것으로 그친대서야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니 해방과 자유는 공짜로 얻어진 것이란 말인가!비록 고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자유와 독립을 기리면서 앞으로 새로운 60년을 향해 그 때 그날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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