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청사건과 X파일

2005-08-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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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돈(법정통역관)

정부기관인 국가정보원이 불법으로 자행한 도청 자료가 그 기관의 손을 떠나 몇몇 개인의 협박 공갈 자료로 둔갑하게 된 사건이 터졌다. 연이은 사건의 배경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규모가 메가톤급으로 확대되어 온 나라가 뒤집힐 듯이 시끄럽다.이 사건을 접한 일반 국민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정부기관이 이런 불법을 저질렀다는 놀라움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정부가 저질러 온 수많은 불법이나 탈
법 행위를 부지기수로 겪어온 경험이 있어 이 정도의 불법행위에 놀랄 정도로 순진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의 지도급에 속한다는 인사들의 비밀스런 대화를 도청한 내용에 관한 호기심 때문이다.그러나 우리가 진실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 본질에 관한 것이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청 내용물이어서는 안된다. 이 사건은 불법에 불법이 더해지는 마치 조직범죄단
체 식의 무법천지 양상이 그 본질이다.정부기관의 불법행위로 도청한 자료를 다시 불법으로 유출하고 이렇게 불법으로 유출된 자료를
이용해서 다시 한번 불법 공갈에 이용하기에 이르는 연속적 범죄 사슬이 그 사건의 몸통이지 불법 도청된 그 내용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기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수사를 맡은 검찰이 그 범죄행위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지 그 도청된 대화의 내용이 어떤 폭발력을 가진 내용이냐 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검찰이 제일 먼저 밝혀야 할 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의 관리가 도청행위가 분명히 불법인
것을 알면서 국가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이런 조직을 설치하고 집행하도록 묵인 내지 사주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이런 불법행위의 수괴라는 점이다. 이 사건에는 분명히 대통령 선에서 묵인하고 도청된 정보를 이용한 흔적이 있는 것이 명백하므로 그 수사의 대상으로 전직 대
통령을 제외해서도 안된다.

두번째의 문제점은 이런 불법 도청자료가 국가기관이 아닌 사사로운 개인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에게 보고되었고 이렇게 수집된 도청자료가 정부의 적절한 통제를 받지 아니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하수인들이 자의로 유출하고 조작했다는 점이다. 김현철에게 유출된 정보에
의해서 고위공무원 몇 사람이 자리에서 밀려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불법도청 사건의 핵심 수혜자였고 그 공작의 중심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대를 이은 김대중 대통령 역시 이런 불법 관행을 묵인 조장했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세번째의 문제는 지금 가장 시끄럽게 토론이 전개되고 있는 도청자료의 공개 여부이다. 불법도청에 가담했던 자들의 입으로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정치인, 경제인 등 주요 인사들이 공개되면 안될 사적인 대화가 녹음되어 있고, 세상이 뒤집힐 정도의 폭발성 내용이 들어있다며 협박을 하고 있다. 원래 정치라는 것이 생리상 그렇듯이 정치적 음모, 비리, 이합 집산, 배신, 반역 등의 모든 대화가 들어있다는 이야기이다.“대통령을 제외하고…”라고 하지만 이것은 대통령이 이 음모의 주모자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 대통령까지도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건의 몸통을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점이다. 즉 도청사건이 문제가 된 본질을 따져야 된다면 사건의 본질은 불법도청 그 자체이지 도청으로 얻은 자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야말로 세상 뒤집힐 내용이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부산물이다.그 내용이 범죄구성의 요건이 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 이상 그 내용을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공개해서는 안된다. 죄를 입증할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면 이를 공개하는 것은 다만 인신공격용 밖에 다른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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