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외동포 노릇 못해 먹겠네!

2005-08-0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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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훈(재활의학과 전문의)

최근 불거진 일명 ‘X파일’로 낙마한 주미한국 홍대사의 스토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칠 줄 모르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한 개인의 야망이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영향, 그것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당하는 창피, 그리고 분노하는 국내의 시민들의 심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부끄럽다거나 노여워하는 첫번째 이유는 국가 권력이 쥐와 새가 되어 무차별 불법 도청으로 유린된 인권 때문이며 나아가서는 도청 내용을 이용해서 어느 특정인(혹은 법인)을 협박하여 정치적이거나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것, 둘째는 관련된 인사가 내로라하는 사회,
경제, 또 정치적 인물들 중에서 이번 도청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며 더 한심한 일은 언론사 사장이 직접 관련되었다는 것, 셋째는 이 사건을 처리하게 될 사법당국이 과연 독립적인(정치적 간섭이 배제된) 수사를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작금에도 그런 도청을 않고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자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 개인의 성취도와 행복감은 대개의 경우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성취욕을 절제하거나 버림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물론 허다하리라.권력, 금력, 그리고 명예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은 어떤 면에서는 극히 자연스런 욕망이라 하
더라도 그것들을 얻은 과정, 얻은 후 그것들을 사용 내지는 활용하는 방법 등은 항시 사회적인 반응과 마주치게 되고 또 싫어도 검증을 받게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 없이) 된다.

가까운 예로 국가 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제 5공화국을 창출한 전두환 8년 정권이 불법 쿠데타의 오명을 벗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현재 나라 안팎은 X파일로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한국사회가 붕괴될 정도의 내용이라고 하니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조차 없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거의 정부(들)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투쟁하여 민주투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정권 아래 시민을 무차별 불
법 도청했다는 것은 인권유린을 자행한 또 다른 행태의 공권에 의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를 조금 비약시키면 이런 자칭, 타칭의 민주투사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들은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불감증에 걸려있거나 걸려있는 척하며 눈치나 보고 있을 것이다. 민주투사와 정치투사는 별개의 것이 아닌가? X파일의 전모를 아직은 모르지만 표면에 떠오른 빙산의 일각은 개인적인 성취욕을 위해 정경 그리고 언론의 유착, 배신, 그리고 한탕주의가 세상을 훔치려 했다는 것이다. 또 누군가 이 파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의심스럽다.권력을 지원하는 금력, 그 돈을 지켜주는 권력, 그 위에 언론이 중심을 잃는다면 세상이 가는 길은 뻔하지 않은가. 조국이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조국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민 1세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라 믿고 또 우리 후손들의 밑거름 됨을 주저하지 않으면서 조국이 우리 앞에 자랑스럽게 서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저 친구들이 “너희들은 왜 그러니” 하고 물어
올까 가슴 조려 해외동포 노릇도 정말 못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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