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품위 잃은 신문 누가 읽을 것인가

2005-08-0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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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보스턴)

한국의 대표적인 재벌기업 삼성, 한국의 주요 언론사인 중앙일보가 나라 안을 한바탕 뒤집어 놓고 있다.

정직한 나라에서 정직하게 살기를 원하는 힘없는 백성들의 분노는 한여름의 불볕 보다 뜨거운 열기로 신문지면을 어지럽게 달구고 있다.국민이 분노하는 발단은 무엇 때문일까. 옛 안기부에서 불법으로 도청한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재벌기업인 삼성과 중요 언론사인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 현 주미대사가 97년 대선에 출마한 이회장 후보측에 100억이 넘는 엄청난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진 일로 온 나라안에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혀 있다.


한국의 대기업이나 돈 있는 재력가들이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에 대가가 있던 없던 간에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제공하는 일이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97년 대선 때 이루어졌던 일이 지금에야 밝혀져 이렇듯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지를 못한다. 다만 한국 최대 삼성이란 대기업이 관련되었다는 문제도 문제지만 그 보다는 주요 언론사 사주가 불법정치자금 조달에 직접 당사자로 관련되었다는데 국민의 놀라움과 분노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가 같은 나라에선 정부의 비호나 지원이 없다면 기업을 유지해 나갈 수 없는 것이 풍토이고 보니 권력을 가진 자에게 불법정치자금을 바치고 눈치를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관행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공기라고 자부하는 언론매체의 사주가 불법정치자금을 은밀하게 갖다 바친 당사자로 나선 일이 비난의 초점이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신문의 역할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그려내 국민에게 바르게 전달하는 역할이 사명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신문을 가까이 두면서 ‘사회의 거울’이나 ‘소리를 내는 목탁’이라고 부르고 있다.따라서 신문은 정확성, 신속성, 정직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편견 없는 논평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공기이기에 국가는 언론매체의 기능을 법률로 보호해 주고 있다.

이번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중앙일보는 창간 이후 우리나라 신문 발전에 기여한 업적도 크다고 본다. 반면에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과 혼란도 적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이 국민들의 인식이다. 타 신문과의 잦은 다툼에서부터 삼성물산의 사카린 밀수사건 은폐를 위한 중앙일보의 부당했던 논평을 국민들은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 과거사를 안고 있는 중앙일보 사주 홍석현씨가 이번에는 불법정치자금 전달자로 나선 행적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일은 당연한 표출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을 숨길 길이 없다.

홍석현 중앙일보 사주가 주미대사로 정부 발령을 받으면서 쓴 고별사의 글을 신문에서 읽었을 때의 기대가 무너져내려 분노 보다는 슬픔의 연민을 가늠할 길이 없다.

세계 104개국 1만800여개의 신문이 가입한 세계 신문협회(WAN) 회장으로 세계적 차원에서 신문의 질적 향상과 언론자유의 신장을 위해 노력했던 일을 자랑과 보람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또 격변시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면서 언론인으로 어려운 시련도 겪었다고 실토도 했다.그는 주미대사를 발판으로 남아로서의 야심도 크게 펼쳐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유엔사무총장이 되어 그 자신은 물론 한국인으로서 세계 무대를 휘어잡아 세계 속에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말도 서슴없이 피력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참으로 컸다. 그런 인물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무서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 같아 몹시 안타깝기만 하다.700억원이 넘는 재산을 가진 그가 전재산의 10%도 안되는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위장 전입까지 했던 오점은 그의 행적에 붙어다니는 그림자가 될 것 같다.

지금 중앙일보는 뼈를 깎는 반성문을 쓴다고는 하지만 품위 잃은 신문, 누가 읽어줄지 자못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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