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舊)데렐라의 꿈

2005-08-0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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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숙(프레시메도우)

얼마 전 딸아이가 프롬파티에 간다며 예쁜 드레스를 사왔다. 내 앞에서 드레스를 입고 뱅뱅 돌고 있는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저렇게 훌쩍 커버렸는지 대견스러움과 동시에 나도 이젠 젊지만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걸 실감케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마치 왕자님을 만날 수 있는 파티에 참석할 수 없는 신데렐라의 신세가 된 것 같아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했다.

17년 전 내가 미국으로 시집을 가겠다고 했을 때 친정엄마는 내게 “미국에 가면 파티에 갈 일이 잦을테니 그 때마다 이것들로 예쁘게 꾸미고 가도록 해라” 하시며 어디서 구했는지 비현실적인(?) 모양새의 모조품 장신구들을 양손 가득 쥐어주셨다. 미국에 오기 전에 나는 철없게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장면들을 연상하며 당연히 땅덩어리가 큰 나라니까 몇 에이커쯤 되는 초원 위에 세워진 저택이며 또 그곳에서 파티같은 것을 열어 우아하게 여흥을 즐기는 그런 모습들을 머리 속에 그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막상 와보니 저택은 고사하고 파티라는 것도 내겐 현실과는 아주 동떨어진 동화속이나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어쩌면 내 평생에 내가 꿈꾸던 파티에 갈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환상은 그렇게 깨지고 엄마가 주신 장신구들은 한번도 빛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세월이 흘러왔던 것이다.

당연히 딸아이의 프롬파티가 내겐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부러웠던지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는데 내가 주책없게도 딸아이의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간 것이었다. 그곳엔 어김없이 백마 탄 왕자님이 등장했고 나보다 한 스무살 쯤 어려보이는 왕자님은 어스름한 불빛에 내가 자기의 동년배 쯤으로 보였는지 내게 접근하며 이름과 사는 곳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공작새 깃털을 붙여 달은 까마귀의 심정으로 아쉬워하며 파티장을 도망쳐 나오다 잠에서 깼다.허무감과 함께 순간이나마 행복했었던 꿈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하며 유리구두만 안 신었지 마치 내가 신데렐라가 된 것 같았다고 했더니 남편이 한 마디 거든다. “신데렐라는 무슨... 구데렐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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