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성이 있는가

2005-07-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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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이번 전교인 수양회는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행해졌다. 전에 수양회 하기에 좋은 시설에서 할 때 보다 이번에는 교인들이 덜 참석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룻밤을 지낸 교인들 중에는 잠자리가 편치 않아 내려간 교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기간 동안 잘
마쳤다.

처음에는 각 가정마다 밥을 해 먹도록 하려 했으나 그렇게 되면 굳이 따로 가지 꼭 교회에 모여 갈 이유가 있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여러 가지의 사정들과 의견이 있겠지만 이렇게 해보기를 원하는 것은 야성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자녀를 일부러 해병대에 입대시키는 분들을 본다.
먼 이국땅에 단기 선교를 보낸다. 고생이 되는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 시대 신앙인들의 모습을 지적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너무 안일하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단지 주일예배만 드리고 그 외 시간과 은사와 재능과 물질, 이러한 것은 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소위 선데이 크리스찬들이다. 초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외면하
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두 번째는 편리함과는 달리 고상하게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점잖게, 체
면과 명예 등, 이러한 것을 생각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에 방언이나 예언, 환상 등 신비에 매이는 경향도 있다. 어떠한 시대라 해도
신앙의 열정 만큼은 ‘뜨겁고’, ‘순수하고’, ‘단순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
기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차를 몇 번씩 갈아타며 할 수 있지만 주일 아침에는 차를 보내주
지 않으면 교회에 못 나온다고 한다. 과거에 사자처럼 포효하며 십리가 멀다하지 않고 새벽예
배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잊고 산다. 한 마디로 야성을 잃어버리고 산다.
뉴저지 식스플렉의 사파리를 하다 보면 호랑이, 사자 같은 맹수들이 유달리 온순하다. 차를 타
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 조차 지르지도 않는다. 왜 그렇게 순한가? 공원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처음에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온종일 사냥
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지 직원들이 사냥하기 쉬운 가축을 여기 저기 풀
어 놓으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소나 염소를 잡는 일은 그들에게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에 비해 훨씬 쉽고 빠른 일이었다. 하루 하루 가축 잡는데 재미를 붙이면서 야생동물 사냥은 점점 멀어지고 손쉬운 먹이만 노리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맹수의 야성을 잃어버리고 순한 소나 양처럼 되고 만 것이다.

자기 만족에 빠져 있고, 손쉬운 비결을 알고 있는 한 더 이상의 것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는 다르다. 물고기의 신비는 바다에 살면서도 소금에 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물고기의 생명은 아니다. 물고기의 생명은 바다 속에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도피성이 아니다. 거룩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도 아니다. 우리는 안전하거나 거룩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산다. 손쉬운 신앙생활은 없다. 광야의 생활을 통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이 있을 뿐이다. 야성을 회복하자. 그것만이 침체에 빠진 자신과 이웃을 살리는 길이다.

본질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직 새로운 것, 더 좋은 것, 변화…. 이러한 것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있는 한인봉사센터에 방학 중에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모여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래도 동포사회에 희망이 있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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