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활에도 속도가 있다

2005-07-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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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우리 집에서 DVD 같이 보자” 다섯 살인 잔이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DVD 가 뭐니?” “만화 보는 거예요”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몇 몇 어른한테 질문을 하였지만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해서 DVD 가게로 갔다. 이것이 DVD와의 첫 만남이었다. 거기서 얻은 지식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 본다.

CD와 DVD는 그 모습이나 크기가 같다. CD는 음향을, DVD는 영상과 음향을 동시에 재생한다. 그렇다면 VIDEO 테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나는 테입에, 다른 하나는 디스켓에 영상과 음향이 들어있다. 또 비디오와 DVD는 다른 기계를 써서 재생할 수 있다. 음악만 들을 경우는 라디오에 녹음 테입과 CD를 들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그것을 이용하면 된다. DVD가 나오면서 비디오를 빌려주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이런 현상은 우체국에서도 볼 수 있다. 뉴욕에서 수신하고 발신하는 우편량은 어느 한 나라의 그것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나 자신이 거의 매일 가는 중앙 우체국은 어느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한산한 편이다. 여기가 연말이나, 납세 마감일인 4월15일 가까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던 곳이다. 요즈음은 사무를 흔히 컴퓨터로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디카’라고 부르는 디지털 카메라는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이용자가 늘어날 수록, ‘원아워 포토’가 한산해 진다고 한다. 전 같으면 서류는 FAX로 보내더라도, 사진이나 수표는 우편으로 따로 보냈는데 요즈음은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다. 전화요금을 납부하는 봉투에 ‘다음 번에는
우표 절약을 하시오’라는 말이 있다. 온라인으로 보내라는 권유인 것이다.


변화는 영원한 것이다. 과거를 보더라도 꾸준히 새로운 물건들이 나와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발전시켰다. 라디오가 나오고, 오래 있다가 흑백 텔레비전이 나오고, 또 얼마 있다가 칼라 텔레비전이 나왔다. 신문도 활판 인쇄에서 문선한 활자를 원고대로 짜는 일을 하다가, 얼마동안은 사진 식자를 하다가, 요즈음은 컴퓨터로 모든 작업을 하게 되었다. 신문에 칼라가 섞이게 된 것도 얼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러한 변천은 숨을 쉬면서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다르다. 헐떡헐떡 숨을 가쁘게 쉬면서 따라가기도 힘들 만큼 그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세상이 발전하는 속도와 개인의 생활 속도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끝까지 내 개인의 속도로 나만의 세계를 살 수 있다. 아니면 여러가지 변화에 관심을 가지더라도 느긋하게 천천히 따라갈 수 있다. 때로는 발전의 속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속도 겨루기를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왜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는가.

내가 앞장서서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는 없겠는가.
어느 것이나 선택은 자유롭고 각자의 생활관이 이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가정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여기서 자라는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어떤 어린이들은 새 것에 대하여 예민하며 기계 조작에 익숙하다 . 어떤 어린이들은 관심을 보이지만 기게를 다루는 일에 소극적이다. 집안을 둘러보면 점점 편리해진다는 생활환경에 필요한 기구들 수효는 나날이 늘어가고 잇다. 단순하게 살려면 엣날식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의 변화에 전연 무관심할 수 없다. 특히 가족을 생각하면 어디까지나 나만의 세계를 고집하기 힘들게 된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변화 무쌍한 시대에 생활할 수 있는것이 다행스럽다. 길 한쪽에 비켜서 있더라도 구경거리, 만져볼거리, 이야기거리, 해볼거리가 많아서 생활이 즐겁기 때문이다. 다만 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생활의 속도를 어떻게 변화의 속도에 맞출까를 정하는 일이다. 고속도로에서 살고있는 것처럼 100마일로 달릴 것인가, 아니면 복잡한 한길의 제한된 안전속도 25마일로 달릴것인가. 그러나 어떤 속도로 달리던지 주위 환경을 살펴야 하는 것이 기본임에 틀림이 없다. 무쌍한 변화를 즐기며 그 속도를 지켜보는 것 또한 뜻이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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