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쓰나미 복구현장에서의 자원봉사

2005-07-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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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승욱(브라운대학교 2학년)

나는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태국에서 단기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을 한 곳은 라농(Ranong)으로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약 350마일 거리에 있으며 미얀마(혹은 버어마)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해안지역이다.

작년 연말에 동·서남아시아를 덮쳐 15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의 흔적은 거의 없었고 석양의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라농에서만 250여명 이상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라농은 태국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지역으로 연간 평균 강우량이 220인치 정도라고 하는데 6~9월은 몬순기간으로 매일 비가 왔다.프로비던스, 아틀란타, 인천공항을 거쳐 28시간만에 방콕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마중나온 사람의 차로 30분 정도 가서 민박집에서 그날 밤을 지냈다.


태국은 물가가 쌌는데 공항 픽업과 숙박료(싱글룸)를 합쳐서 12달러 정도 지불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방콕 시내관광에 나섰다. 왕궁과 큰 절들, 그리고 유명한 수상시장을 구경했다. 한번도 외세의 침범을 받지 않은데 대한 자부심과 국왕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했는데 국왕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방콕에는 절도 많고 스님도 많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여자는 스님의 손을 잡을 수 없다고 하고 여자가 스님에게 물건을 건넬 때는 남자의 손을 통해서 해야만 된다고 했다.쓰나미로 입은 피해는 이미 대부분 복구되었고 자원봉사는 주로 주민(대부분 어민)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내가 맡은 일은 바다 위에 게 양식장(Crab Farm)을 나무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하루 6시간30분(오전 9~12시, 오후 1:30~5시)씩 일을 했다. 날씨가 덥다 보니 조금만 일하면 온몸에서 땀이 흘렀고 바다에서 작업을 하니 피부가 금방 쌔까맣게 탔다. 캠프 측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태국 가정에 소개시켜 주었다. 자원봉사자들은 홈 스테이를 제공하는 가정에 하루 10달러를 주었고 각 가정은 숙식을 제공해 주었다. 주민들을 경제적으로 돕고 태국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되었다.

태국사람들의 종교는 불교 95%, 회교 4%, 기타 1%인데 회교는 말레이시아와 가까운 남부지방의 주민들이 주로 믿는다. 라농 주민 대부분은 회교를 믿어 닭고기를 제외한 고기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해산물이 풍부하였고 근처에 있는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따다 먹기도 했다. 옆집에서 지낸 자원봉사자는 밥과 개미가 섞인 식사가 나왔는데 밥에 개미가 기어들어간 줄 알았다고 했다. 다행히 내가 있던 집에서는 개미가 식사로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직접 빨래를 했는데 라농은 온천지대로 비누가 물에 잘 풀리지 않아 여러번 행궈야 했다. 화장실에서는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봐야 했고, 물을 내리는 장치가 없어 바가지로 물을 떠다 부어야 했다. 누군가 화장실에 있는데 어른 키 만한 독사(Viper)가 옆을 지나갔다는 말을 듣고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긴장이 되었다. 길거리에서는 뱀을 종종 볼 수 있었다.태국을 미소의 나라(The Land of Smile)라고 한다.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하는 특유의 인사법인 와이는 이방인도 저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두 손을 모으고 팔과 팔꿈치를 몸에 붙인 채 ‘와이’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인다.

주어진 일로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식사를 하고 마루에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자면 그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여유롭고 한가한데 스스로 놀라곤 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가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다.그들에게 내가 해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가 갖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참으로 기뻤다.그날 밤에 나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아침에 익숙한 문화와 환경속으로 돌아온 나를 발견하였다. 정보산업 첨단국가인 한국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지도교수와 함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 대한 연구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라농에서 보낸 시간이 어쩌면 가상현실 같기도 하다. 하지만 태국 사람들의 때묻지 않은 미소와 소박한 삶은 기억 속에 오래도록 함께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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