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앨리폰드 숲에서 온 편지

2005-07-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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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편집국 부국장

얼마전 공원 관리국 커미셔너로부터 편지를 받았다.열세살짜리 딸의 이메일로 온 편지에는 ‘공원의 보호와 관리에 관심을 가져주어 고맙다. 공원에 오는 사람들에게 주의사항을 알리는 사인을 붙이겠다’는 내용으로 이는 두어달 전 아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신이었다.우리는 앨리폰드 팍 가까이 살고 있다. 평소에는 산책을 하거나 운동 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을
뿐 조용한 숲이 본격적인 바비큐 시즌이 되면서 주말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주차장을 낀 바비큐 장소에는 하루종일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고 다양한 스포츠 게임을 하며 웃고 즐긴다.

두 달 전, 토요일 오후 저녁을 먹고 아이와 숲으로의 산책에 나섰다. 집과 좀 떨어진 거리에 있는 바비큐 장소에는 아직도 남아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소풍객들이 있어 숲이 울창한 산으로 올라갔다. 밤의 적막 속에 깃들 차비를 하고 있는 숲은 싱그럽고도 상쾌한 숨결을 날리고 있었다.십여분 이상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야트막한 산을 넘어 베이비 축구장과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곳을 지나는데 오른쪽 숲에 허연 연기가 자욱하게 서려있다. 연기가 하도 심해 그쪽으로 가보았더니 바비큐 화덕이 있는 곳에 행락객들은 다 돌아가고 불을 끄느라고 끄고 간 자리에서
불쏘시개로 썼음직한 나뭇가지에 불똥이 살아 오르고 있었다. 흙을 살짝 덮은 조개탄도 재색이지만 후끈거리는 것이 바람 한줄기만 불어도 타다닥 불길이 살아오를 것 같았다.


작년에 캘리포니아 지역의 산불로 수백년된 아름드리 나무들과 가옥이 불탄 처참한 현장이 떠올라 이 아름다운 숲이 불길에 잡히면 근처 주택가는 불바다가 된다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아이더러 나뭇가지를 주워 흙을 파게하고 노란쌀밥과 음식찌꺼기가 흘러넘치는 쓰레기통에서 빈 컵을 주어 흙을 담아 갖다 붓기 수십차례, 운동화 신은 발로 꾹꾹 누르니 발바닥이 따끈따끈하고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흙을 파대고 나중에는 종이컵이 성에 안차 양손바닥으로 흙을 담아부어도 여전히 뜨거운 불씨는 죽지 않았다.

빈손으로 나온 산책길인지라 15분 거리인 집에 가서 물통을 가져오기전에 일 날 것 같아서 쓰레기통을 다시 뒤져보니 2갤런짜리 물통이 나왔다. 그 옆의 수도는 꽉 막혀있고, 다시 놀이터 옆으로 달려가니 아직 아이들이 몰려서 놀고있는 수돗가에 마시는 물이 졸졸졸 나오고 있다.고여있는 구정물을 컵으로 받아서 물통에 채워 몇 번이나 날라서 재위에 부으니 그제야 피시식 흰 연기를 피어 올리며 불씨가 꺼지기 시작했다.아이는 그날 밤 뉴욕 팍 웹사이트로 들어가 최고책임자에게 숲 속에 있는 바비큐 장소의 안전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친구한테 전화하여 ‘어떤 인간이 고기 구워먹고 불도 제대로 안끄고 갔다’고 욕을 해댔더니 ‘좋은 일 하고 남한테 자꾸 말하면 좋은 일 아니야’ 하여 그만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만천하에 광고하고 있다.

앨리폰드팍은 한인단체나 교회에서 야유회, 체육대회, 야외예배 등으로 즐겨 애용하고 있는 장소이다. 수백명이 몰려 바비큐를 하고 난 뒤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불판, 허옇게 널린 쓰레기나 제대로 밀봉 안된 한글로 쓰인 마켓 비닐봉지를 보면 부끄럽다. 이 동네 산다는 이유 하나로 주말 저녁마다 공원에 가서 각 단체들이 바비큐 해먹고 불을 잘 끄고 갔나를 감시할 수는 없다. 물 두어 병은 반드시 남겨서 완전히 재가 물로 젖은 것을 확인하고 가기 바란다. 잘 놀고 난 다음 어른과 아이 모두 비닐봉지를 들고 자신이 남긴 쓰레기를 줍는다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다.

이것이 바로 산 교육이다.뉴욕시에서 이 앨리폰드 팍 만큼 가족간 화목을 도모하고 동료간 우애를 다지기에 만만한 야유회 장소가 또 어디 있던가. 동네 잔칫집처럼 마음 편하고 부담없고 넓은 자연의 품 속 아닌가. 우리가 자주 가고 이용하기에 거대한 우리집 뜰인 된 앨리폰드 팍, 우리의 숲은 우리가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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