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동포라고 말은 하면서도

2005-07-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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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논설위원>

미국에 이민 와 있는 우리 한인들은 ‘동포’라는 소리를 많이 쓴다. 툭하면 동포다, 조선족이다 하는 얘기를 하는데 과연 이를 어느 쪽에다 놓고 해석을 해야 할지 상당히 의문스럽다. 그 중에는 하나의 나라를 오랫동안 이끌어 오고 그 나라 안에서 같이 살아 왔다는 테두리에서 그럴 것이고 또 하나는 같은 문화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한 동포’다 ‘한 민족이다‘는 말을 쓰는 것같다. 아니면 인종을 따져 다시 말해 ‘단군의 자손들이다’ 라는 점을 들어 ‘한 민족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미국에 많은 민족이 살지만 우선 미국인들에게서는 ‘동포’라고 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같은 땅에 살면서 한 문화를 같이 공유하며 산다는 의미에서 ‘한 국민이다‘라고 보지 ‘동포’라고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곳에 중국인들이 많으나 그들도 ‘차이니
스’라고 하지 ‘동포’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중국만 해도 동포가 될 수 있는 종족이 5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나머지 적은 소수민족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 사람들도 그 나라에서 같이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는 중국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하지 ‘한 동포다’ 하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 ‘동포’ 소리를 하고 있다. 일본인들에게서도 언제 ‘우리가 동포’라고 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느 곳에서든 ‘동포’라는 말은 한 자도 써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동포, 동포 하는 것은 참으로 친밀감이 있고 듣기가 좋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면 우리나라에도 동포라고 하는 말을 쉽게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인
종이 여럿이다.
멀잖은 과거에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들, 또 살기 좋아 우리나라를 찾아든 북방민족, 쌀 농사에
좋은 우리나라 남쪽 땅을 찾아 정착한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등 인근에서 모여든 남방민족
등.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민족 분포도도 다양하다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보았을 때 과연 우리
가 인종적으로 한 동포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동포라고 하면 물론, 듣기에는 참 좋다. 그러
나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동포라는 단어에서 같을 동자를 쓸 요량이면 같다고 하는 점을 찾아
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조그만 삼천리 반도에서는 역사적으로 참 많이 부대끼며 살았다. 때문에 조선족 하
나만도 여러 갈래이다. 고구려가 망하면서 유민이 조선족으로 남아있는 경우, 심지어는 중국의
고산지대에 숨어있는 소수민족, 아니면 중국에서 인근 국가로 넘어가는 고산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민족 등. 이 모든 아시아민족 중에도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과 말이나 생김새, 생활방식
등이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어느 교수는 이 민족을 ‘고구려 유민’이라고 말한 적
이 있다.
또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중국으로 들어가 조선족이 되었거나 억압에 의해서 만주로 끌려
가 살고 있는 동포들을 들 수 있다. 또 사상적인 이유에서 만주나 소련, 중국 등지로 흩어져 살
게 된 우리 민족도 없지 않다. 또 문화적인 면에서 한 동포라 같은 류의 의식주를 누리고 예절이나 풍습도 똑 같이 한국식으로 영위하며 사는 동포들도 있다.

아무튼 배경이 어떻든 우리가 서로 동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민사회도 따지고 보면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아 우리가 쉽게 동포라는 말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가 서로 동포라고 할 수 있는 사이라면 어느 한 쪽도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희생은 결국 서로간의 다툼에서 발생한다. 안된 얘기지만 우리 동포들의 눈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칼이 숨어 있다. 한편으론 승리를 꿈꾸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패자의 눈물이 준비되어 있다. 남을 죽이고 남을 베서 이기려고 하는 이중성. 이 이중성을 버리지 않으면 동포, 동포 하는 우리사회에서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조선족이든, 한민족이든 우리가 지금 한 터전에서 살고는 있지만 사실 서로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모르는 사람이라도 모여 살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기왕에 이웃됐으니 ‘멀리 떨어진 형제 보다 더 낫다’는 말과 같이 더 끈끈한 촌수를 맺어가며 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에 툭하면 한 동포, 동포 하면서 진흙 밭에서 개가 싸우는 것 보다 더 지저분하게 싸우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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