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어버이 살아 실제

2005-07-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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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호<취재1부 기자>

노쇠한 사람을 음식물과 함께 동굴 속 등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그 장소에 그대로 안치하는 고구려 시대의 장사법이 ‘고려장’이다. ‘기로전설‘ 또는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유래‘등의 설화에서는 고령의 할아버지를 버리고 가려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아버지가 늙으면 똑같이 버리기 위해 지게를 챙겨가려고 한다”는 얘기를 듣고 뉘우쳐 아버지를 다시 모셔와 잘 봉양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이같은 전래동화를 통해 경로사상을 자녀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요즘,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한국소식에서는 부모 공경사상이 과연 제대로 남아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파킨슨씨병에 걸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어머니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된다며 흉기로 찔러 살해한 서울의 진모씨 사건. 20대 남성이 치매와 하반신 마비를 앓고
있는 62세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가 굶어 숨지게 한 사건. 수천만원의 카드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는다며 아들이 어머니와 할머니를 목졸라 숨지게 하는 등 패륜적인 사건은 지난 몇달간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문제는 경로사상의 실종은 한국 뿐 아니라 이곳 이민사회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코로나 경로회관이 주관해, 지병이 있거나 병원에서 막 퇴원해 거동이 불편, 가사를 영위할 능역이 없는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제공되는 무료 점심 배달 서비스 ‘Home Delivery Service’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영 노인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어떤 분은 다리가 아프고 노쇠해 보행 보조기구가 없이는 걸을 수가 없어 스스로 음식을 만들지 못한다고 밝혔다. 점심 배달 프로그램이 정말 유익하다며 반갑게 맞았다. 매년 평균 75명의 노인들이 점심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이중 대부분의 노인들이 혼자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자원봉사자들의 말이 층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혼정신성(昏定晨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밤에 잘 때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 안녕하시기를 여쭙는다‘는 뜻의 혼정과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의 침소에 가서 밤새의 안후를 살핀다’의 뜻의 신성이 결합된 이 말은 부모를 섬기는 자식의 바른 효행을 일컫는다. 비록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부모님을 모시고 음식을 챙겨드리며 나를 위해 고생하신 것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당신의 자녀가 누구를 보고 배울지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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