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밥상 위의 삼치와 사랑

2005-07-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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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삼치와 사랑에는 부레가 없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 다르겠지만 횟감 중에 으뜸은 대중적이면서도 고급인 삼치일께다. 그런데 그 많은 종류의 물고기 중에서 유독 삼치만이 부레가 없다. 부레란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물 속에 잠기기도 하고 물 위로 뜨게도 하는 기관인데 삼치에는
이 귀중한 부레가 없다. 그러니 수장을 면하려면 쉬지않고 헤엄을 쳐야 한다. 죽지 않으려고 계속 움직여야 하니 무척이나 힘이 들겠지.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른다.삼치의 살 색깔은 약간의 노란색이 아련하게 멀리 깔린 분홍색이다. 사랑의 색깔이 무엇이냐고 어느 누가 묻는다면 “삼치의 수줍은 연분홍 색깔이지” 하고 대답을 해주고 싶다.

사랑에도 부레가 없다. 그러니 사랑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관계가 죽지 않고, 사랑을 시들지 않게 지속하려면 사랑을 계속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게 쉬운 일 같지만 사랑의 지속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을 얻기까지는 묘하게 힘이 들었지만 그 그림은 아름다웠다. 거저 주운 것
이 아니다. 백년해로를 성공적으로 끝을 내가는 호탕한 어르신에게 “살면서 무엇이 가장 힘이 들었느냐”고 물으면 “할멈 비위 맞추는 일이지” 하고 웃는다. 그것이 사랑이다.


시작할 때의 작심을 평생 잊지 않고 가슴속에 명찰로 달고 사는 사람만이 사랑의 관계에서 성공을 하는 사람이다. 결혼을 하면 좋게 말해서 더 없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아니면 목숨이 다 할 때까지 한 배를 지겹게 타고 가야 한다는 짜증 때문에선지 날이 갈수록 상대에 대한 존중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던 옛날식의 내용은 다 없어진다. 말투가 달라지고 이해하는 아량이 점점 짜진다. 남자쪽으로 말하자면 아내의 잔소리, 여자쪽으로 말하자면 남편의 퉁명스러운 무관심이 사랑의 사이를 점점 더 벌려 놓는다.
짝지어 걸어가는 노인을 바라보면 아름답다. 말이 없어도 살아온 내용을 지천으로 길에다 깔고 가는 노인 부부, 비좁은 비행기 좌석에다 아내를 누이고 뒷자리 화장실 옆에 서 있는 노인을 보면 인생의 연민이 물밀듯이 몰려온다.

아무 꽃이나 한다발 엮어서 아무 말 없이 건네주고 싶어진다.
사랑은 두 사람의 동의로서 정착하는 만큼, 사랑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다만 저절로 뜨게 하는 부레가 사랑에도 없기 때문에 쉬지않고 사랑을 가꾸는 사람만이 사랑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또한 인생의 값을 비싸게 얻어내는 사람이다.사랑을 위하여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산송장과 같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아름답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더 아름답다. 산천이 아름다운 이 땅, 거기에는 아름다워야 할 까닭이 있다. 무슨 까닭이 있을까?

손도 아픔을 쓰다듬으면 부드러운 손이 되며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면 위안의 손이 된다. 삿대질을 하면 무례한 손이 되고, 때리면 아프게 하는 것이 손이 된다. 우리더러 세월은 섰지 말라 하면서 모든 사람들의 등을 떠밀고 구름은 거기에 섰지 말고 따라오라 하면서 사람들 눈앞에서 앞서서 간다. 목을 태우는 가뭄은 땅을 갈라지게 하고, 가뭄에 땡볕을 견디고 익어간 사과는 과수원 농부를 일어서게 만든다.

어려운 일 중에서 가장 힘이 드는 일이 사랑을 가꾸고 지켜내는 일이다. 사랑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실천은 다 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나는 해맑은 날이면 사랑하는 사람 손이나 많이 잡고 보이지 않는 인생의 티끌을 툭툭 털면서 시골길을 다닌다.
사랑에는 제목이 없다. 부레 없는 삼치의 노고처럼 사랑을 살리기 위한 헤엄만이 제목이 된다. 마음에 담긴 사랑으로 상대를 쓰다듬어 줄 때 의기양양한 힘을 얻고 어려운 세상을 힘있게 헤쳐나갈 용기를 얻는다. 저 연한 살색깔의 삼치와 사랑이 쉬지 않고 헤엄을 쳐야하는 까닭, 부레 없는 삼치와 부레 없는 사랑이 밥상 위에서 나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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