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진호 전투를 돌아보며

2005-07-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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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리(아틀란타)

올해는 6.25전쟁 55주년이 되는 해로서 필자는 최근 6.25전쟁 중 유명한 1950년 겨울 장진호 전투, 즉 Break Out(저자 마틴 러스 약 600여쪽) 책을 읽어볼 수 있었다.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미 해병대 1사단의 용감한 전투 장면을 구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는 필자가 살던 고향에서 북쪽으로 약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함경남도 개마고원에 위치하고 있다.일제 때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생긴 커다란 호수에서 1950년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약 1개월간 당시 미 10군단 예하 해병 1사단과 육군 7사단 병력 약 2만여명과 중공군 8개 사단 10여만명 간에 벌어진 치열한 산악 전투를 말한다.


그런데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과 소련군 간에 있었던 스타린 그라드 전투와 맞먹는 세계 2대 동계 전투 중 하나라고 하며, 당시 스타린 그라드 전투에서는 독일군이 소련군에 항복하였다. 장진호 전투에서는 미 해병 1사단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많은 사상자와 군사장비 대부분을 거느리고 중공군의 2중 3중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중공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하고 110 킬로미터 떨어진 남쪽 흥남 부두까지 철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필자는 당시 18세였는데 유엔군이 9.28 인천 상륙 이후 필자의 고향까지 진격하여 이제는 공산군이 물러가고 평화가 오고 통일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달도 안되어 중공군의 개입으로 장진호 지역에서 전투가 이루어지는 것을 멀리 수십마일 남쪽에서 바라보았다.매일 수많은 전투기와 보급품을 나르는 수송기가 장진호 지역을 까맣게 누비고 전쟁으로 인한
연기가 멀리 동해안까지 뻗어 있는 것을 보고 전투가 매일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늦게나마 장진호 전투의 실상을 책을 통해 보니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실지 체험한 것이나 다름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장진호 전투 중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하면, 해병대원은 대부분 20세 전후의 젊은 청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전투중 어려울 때나 기쁠 때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찾고 기도했다고 하며 장진호 주민들 중에서 기독교를 믿는 신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쯤 그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장진호 전투 중에 보통 소대 중대 단위로 전투를 치루는데 그야말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중공군과 한 번 전투를 치르고 나면 병력의 1/2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특히 전투 중 가장 용감한 소대장 두 사람이 있었는데 츄엔리 중위와 존 얀시 중위는 부상중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지휘함으로써 장진호에서 후퇴하는 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고 한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은 전사 2,500여명, 부상 1만2,500여명, 유엔군은 전사 700명 이상, 부상자 3,500명, 그리고 동상환자 600여명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가를 느낄 수 있다. 전사한 장병에 대하여 충심으로 명복을 비는 바이다.이제 세월이 흘러 6.25전쟁이 일어난지 55년이 지난 가운데 남북간에 6.25 공동선언 이후 남북 관계가 많이 호전되어 어려운 북한에 비료와 식량을 다량으로 원조해 주고 6자 핵문제 해결 회담도 곧 열리낟고 하는데 어쨌든 한반도에 다시 전쟁의 악몽이 없어야 하고 민족의 염원인 자유민주주의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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