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없이 돌아온 용사

2005-07-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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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기(롱아일랜드)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국군을 본다/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시/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품어나온다/장미 냄새 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모윤숙 시인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중 일부다.

매년 메모리얼 데이가 오고 간다. 나라를 위해 피 흘려 산화한 용사들을 기념하는 날이 그냥 즐기며 놀러가는 유흥의 롱 위크앤드로 변신해 가고 있다.‘김치 불고기 맛있습니다’라고 한국말을 하면서 세탁물을 가지고 온 인상 좋고 잘 생긴 마이클이 눈에 선하다. ‘한국 아름답고 좋은 사람들 많아요. 나도 한국사람 많이 사랑합니다’ 떠듬 떠듬, 그러나 정확하게 얘기를 해 고향사람 만난듯 반가워 미 군사고문단 연락장교로, 카츄
사 파견대장으로 근무하던 때의 일들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나누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후 마이클은 이라크로 간다고 들렸었다. 함께 손잡고 무사 귀환하길 기도하며 보냈다. 6개월 후 쯤 휴가차 잠시 돌아와 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기쁘고 감사해 한아름 갖고 온 세탁물을 그냥 해 주었다. 하긴 나도 그 나이땐 월남전 2년 근무하면서 불안과 공포 같은 것은 별로 느껴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어머님은 아들 둘을 월남에 보내시고 얼마나 맘 조리며 눈물로 기도하셨을까. 이제야 어렴풋이 생각되니 자식이 부모 맘 죽을 때까지도 다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라크 피해상황이 발표될 때마다 나는 내 자식을 보낸 듯 맘 졸이며 마이클이 무사 귀환하길 기도했었다. 얼마 전 한국계 미군 최민수군의 전사 소식을 듣고 그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가슴 아파 했었다.한동안 마이클을 잊고 있었는데 마이클 동생이 어두운 얼굴로 들어서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직감이라고 하는걸까? 자살폭탄에 그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젊은 꽃이 그렇게 이름 모를 이국의 모래 위에 피흘리며 떨어지다니.

전쟁은 왜 있어야만 하나? 미국은 국제경찰 역할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피를 더 흘려야만 하나? 이 전쟁도 월남처럼 피만 흘리고 흐지부지 뒷꽁무니를 빼지는 않을까? 아들 딸들을 잃은 부모들, 부모 잃은 자식들,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부상 당해 돌아온 상이군인과 가족,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누가 얼마나 같이 아파하며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전사상 보상제도의 빈약함을 지적한 글을 보면서 형평성의 결여에 놀랄 수 밖에 없다. 또한 한국의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처우에 대한 유가족의 분노를 이해하면서 그들의 아픔에 동정을 금할 수가 없다.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가에 라일락이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리며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다. 마치 젊은이들이 흘린 피의 향기인 듯, 그들이 못다 하고 간 마지막 말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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