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에서 시작된 뉴욕한인 무역 도매업계의 성장은 남다르다. 70년대 한국의 가발과 의류, 커스텀 주얼리 등 경공업 제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첨병으로 활약하면서 급성장을 해왔다. 중국시장 개방과 함께 주 거래선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자본력으로 한인 경제의
한축으로 굳건히 자리내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무역도매업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중국계 등 타민족의 진출이 크게 증가했고, 미국내 경기 침체로 인한 매출 부진 등이 한인 무역도매업계를 옥죄고 있다. 한인 무역도매업계에서는 업종 전문화와 미국의 백화점 등 메인스트림 시장 진출을 탈출구로 보고 있다. 또 타업소와의 차별을 위해 고급 쇼룸을 설치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무역도매업계의 성장과 한계
한인 무역도매업계는 바이어가 원하는 제품을 즉시 공급할 수 있는 ‘재고 확보’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지방이나 해외에서 주문을 받은 뒤 물량을 공급받아 판매하는 방식이었지만 한인들은 미리 물량을 확보한 뒤 필요한 제품을 즉시 제공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지의 바이어들에게 이같은 방식은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효과를 냈고 한인 무역도매업계는 급성장할 수 있었다.한인 무역도매업계의 주요 제품은 초기 가발과 모자, 가방 등에서 의류와 주얼리, 장난감 등으로 확대됐고 일부에서는 전자제품 등을 취급하기도 했다. 중국시장이 개방되면서 한인 무역도매업계는 중국이나 베트남 지역에 공장을 운영하는 등 발빠르게 대처했다.
그러나 중국계와 중동계 등 타민족의 도매업계 진출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대표적인 한인 무역도매업계 밀집지역인 맨하탄 브로드웨이에는 지난 80~90년대 한인 업소가 전체 70% 이상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50%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병관 뉴욕한인경제인협회장은 “공급 과잉이 된 셈”이라며 “90년대 후반부터 한인 무역도매업계는 투자를 통한 전문화를 꾀하고 미국 대형 마켓에 진출하는 노력을 시작했다”고 말했
다.
■전문화와 메인스트림 진출
한인 무역도매업체는 다양한 품목을 잡화점식으로 취급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커스텀 주얼리의 경우만 보더라도 비슷비슷한 제품으로는 바이어의 눈길을 끌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인과 질적인 측면에서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체인 앤드 판타지아’사의 유영욱 사장은 “현재 디자이너 5명으로 구성된 디자인팀을 운영하고 있다”며 “각종 쇼를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남들과 다른 디자인의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기존의 잡화점식 쇼룸을 고급스럽게 꾸며 바이어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고 대형 창고 확보를 위해 뉴저지 등으로 회사를 이전하는 한인 회사들도 점차 늘고 있다.
마케팅 부분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제품을 준비해놓고 바이어를 기다리는 방식에서 온라인을 통한 전자상거래(e-commerce)는 기본이 됐고 미국인 마케팅회사와 제휴해 홈샤핑이나 K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점, 백화점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었다.
커스텀 주얼리를 취급하는 ‘오블롱’사의 강병목 사장은 “백화점이나 할인점은 남들보다 한발 앞선 디자인과 유행 패턴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 투자가 필요하지만 결국 한인 무역도매업계가 나아갈 길”이라고 말했다.
<김주찬 기자> jckim@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