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식 고려장

2004-09-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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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신(보스턴)

서울의 42세 심 모씨는 안방에서 잠자는 65세 아버지의 목을 오른쪽 발로 눌러 숨지게 했다. 4년 전부터 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대소변 수발을 들게 된 것이 불만이고 생활에 걸림돌이 되어서란다.

옛날같으면 고려장을 하러 산으로 갔겠지만 집에서 살인을 하고, 15만원을 주고 의사의 검안서를 발급받아 동생과 함께 시신을 화장한 것이다.
물론 심씨는 응분의 벌을 면치 못하겠지만 지금 한국에는 노인이 증가하여 비중이 8%인데 부양이 어려워 제주도로 효도관광을 가서 버리고 오거나 병원에 입원시키고 자손들이 행방을 감추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노인문제는 어느 사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에서는 고령사회문제 해결을 위히 필리핀에 ‘노인 수출’을 계획한다니 신식 고려장이라고나 할까?

미국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12.4%로 3,500만명인데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른 것과 같이 각자의 여건으로 다양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널싱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160만명이고 많은 서민들이 시설 좋은 노인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노인들의 공통된 어려움을 꼽자면 첫째 병 들어 건강을 잃는 것이고 둘째, 수입이 적으며 셋째,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 고독한
것이다.

그런데 이 3고를 견디어나가기 위해서는 병이 나면 사회보장이 주는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고 생활비는 SSA나 SSI로 아껴 쓰면 될 것이다. 그러나 고독이라는 것은 자식이나 친척, 또는 친구가 서로 돕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는 고통 중의 고통이다. 특히 우리 한인들은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로 미국사회 단체나 노인센터에도 가지 않고 홀로 있다가 죽는 사람
을 여럿 보았다.

내가 사는 성 알피오스 빌라는 150 홀로 가구가 살 수 있는 노인아파트이다. 부부가 같이 사는 수는 극히 드물고 남자 보다 홀로사는 여성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홍순기씨와 나는 이곳에서 층수는 다르지만 10여년을 같이 살아왔다. 3년 전 어느 날 저녁에 전화를 여러번 걸었지만 받지를 않아 이상히 여기면서 그의 딸에게 전화를 해 봤지만 모른다고 했다. 수상한 생각이 들어 내려가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었다. 더욱 의심이 나 소방서에 연락하여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홍씨는 상반신을 침대 밑으로 내린 채 죽은 상태였
다.

즉시 911을 호출하여 병원 응급실로 보내져서 그는 일주일만에 소생했다. 의사의 말이 이를 기적이라며 학회에 보고한다고 했다.

언젠가는 길거리에 쓰러진 노파를 비롯 아픈 노인들을 응급실로 입원시킨 것이 지금까지 도합 20회가 훨씬 넘는다.어떤 때는 자식에게 연락했더니 바쁘다며 나보고 좀 수고해 달란다.응급실로 가는 것 보다 더 바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또 환자도 바쁜 아들을 오라고 하지 말란다. 죽음 앞에서도 모성애의 모습을 보인다.


한번은 서류미비자 노인이 팔에 골절상을 입었다. 수술비나 기타 걱정되는 일이 있지만 병원에 안 갈 수 없었다. 늙수그레한 전문의는 ‘의사는 병 고치는 사람일 뿐’이라며 무상으로 수술을 해 주었다. 미국의 휴머니즘 정신에 감탄했다.

9월 1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해마다 조용하여 관심 조차 없는 것 같다. 쓸쓸한 가을의 문턱에 훈훈한 소식은 32세의 인도 젊은이가 눈이 먼 어머니를 등에 업고 8년째 인도 전역을 순례하고 있다는데 앞으로도 9년을 더 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각박한 시대에 감탄할 일이다. 내가 능력있을 때 남을 돕고 내가 무능할 때 남의 도움을 받는 문화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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