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걱정만 앞선다

2004-09-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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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종교전문기자.목회학 박사>

33년 전 한국 육군에 복무할 때 일이다. 졸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고향이 강원도라 원주에서 신병 훈련을 받았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라 너무나 반가웠다.

헤어진지 오래된 친구들도 서로 반말을 하며 금방 친숙해졌다. 신병훈련은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친구들과 서로 격려하며 훈련을 무사히 마쳤다.보충대로 가기 전 신병훈련소에서 팔려 가는 날이었다. 나와 친하게 훈련을 받았던 한 동료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내가 아닌 뒤에 있는 동료랑 함께 불려 서울로 팔렸다. 그의 삼촌이 장군이란 말을 들었다. 나와 많은 동료들이 춘천에 있는 보충대로 팔렸다. 소총수로 분리돼 전방으로 가는 길이다.
원주를 떠나 춘천으로 갔다. 춘천에서 다시 팔려 00사단, 00연대, 0대대, 0중대, 최전방까지 팔렸다. 중대에 들어가니 중대장과 선임하사가 면접을 했다.

면접을 끝냈다. 관물을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대대 참모부 선임하사가 왔다. 중대장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더니 관물을 싸라했다. 대대 참모부로 전입됐다.

직책은 인사 서기병이었다. 인사 서기병이란 대대내의 모든 군인들의 인사기록작성과 외출, 출장 등을 관장하는 자리였다. 위에는 인사장교와 인사선임하사와 병장인 고참 인사 서기병이 있었다. 고참 인사 서기병은 그때 젓가락(11) 군번이었다. 논산훈련소에서 받은 11로 시작되는 군번으로 1960년대 말과 70년 초에 군대 생활을 마치게 되는 군번이었다.

인사 서기병 사수(고참)는 제대 3개월을 앞두고 있었다. 좋은 놈 하나 골랐다. 어디 한 번 글이나 써 봐라해서 글을 썼더니 좋아했다. 비딱거리지 않고 글이 제대로 나갔으니 그렇다.

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고 이튿날부터 참모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모든 게 어색했다. 이등병, 제일 졸병이니 할 일도 많았다. 그 때, 대대 참모부에는 육사를 졸업한 대대장이 있었고 인사, 정보, 작전, 군수 장교가 있었다. 각과마다 또 선임하사가 있다. 그리고 사병들이 있다. 참모부 안에 근무하는 군인만 장교와 하사관 병들을 포함해 15명이 넘었다. 나와 함께 대대 참모부에 전입된 또 다른 이등병이 있었다. 그는 군수 서기병으로 직책이 정해졌다.

처음 며칠간은 잘 넘어갔다. 일주일이 지나자 화장실 뒤로 집합이 시작됐다. 줄 매(빠따)가 쳐지기 시작했다. 나랑 나와 함께 전입된 또 다른 이등병 친구와는 번갈아 가며 제일 뒤에서야 했다. 고참서부터 한 대를 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맞기 시작하면 제일 뒤에 서 있는 나와 동료는 몇 곱으로 맞아야 했다. 한 마디로 군기 잡기였다.

참모부 내무반은 대대 통신대 사병들과 같이 했다. 매일 자기 전에 점호가 있다. 당직사관이 점호를 받는다. 참모부 정보장교는 3사관 출신 장교였다. 인상이 좋지 않다. 정보장교가 당직사관일 때는 모두 각오해야 했다. 각오란 맞을 각오다. 군화로 정강이를 차는데 사정이 없었다.


그 때 정강이 까진 곳이 흉터가 되었는데 지금도 계급장처럼 군데군데 남아있다. 겨울철, 고참들 식기를 수십 개씩 쌓아 들고 냇가로 가서 씻는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라 식기는 잘 닦이지 않는다. 비누칠을 해 기름기가 없도록 닦아야 한다. 밥 먹으러 식당에 가면 고참들 밥을 타다 바친다. 때가 되면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바친다. 저녁 점호 시간 전에는 잠자리를 펴주고, 발 닦을 물까지 떠다 난로에 뜨겁게 해 바친다.

고참 서기병이 제대했다. 제대만 했지 밑에는 졸병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하기를 작대기 세 개, 상병까지 지냈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때리지는 못했다. 밑에 졸병이 없어서 때릴 차례가 없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나는 얼굴은 집합 잘시키던 고참병과 정강이 때리기를 즐겼던 정보장교다. 그래도 3년 동안 국방의 의무를 잘 마치고 제대했다.

줄 매를 때리든 맞든, 대한민국은 젊은 청년들의 국방 의무를 통해 지켜져 왔고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는 돈주고 사기신체검사를 받아 군 입대를 면제받은 청년들이 있어 의분을 사고 있다. 유명 야구 선수들을 비롯해 일부 탤런트 등 150여명이나 연루돼 있다.

한심한 노릇인데, 더 한 것은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국정이 그렇다. 1,400여명의 원로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한 것만 봐도 심상치가 않다. 경제도 그렇다. IMF가 났을 때보다 더 살기 어렵다 한다.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넘보고 있다. 나라가 잘돼야 할텐데, 걱정만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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