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의 동북 3성

2004-09-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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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선(브루클린)

중국의 수도 북경이 중원땅에 있지 않고 중국의 하북성 동북쪽에 치우쳐 있는 이유는 한족(漢族)이 아닌 비한족에 의해서 전략적, 정치적으로 도읍되었기 때문이다.

북경은 고조선의 이웃 나라였던 연(燕)나라 때에 계성이란 이름으로 시작되어, 거란의 요나라가 중원지방 공략 거점으로 계성을 남경으로 삼았다. 북경이 통일 중국의 정권 수도가 된 것은 금나라 때로 이 때의 이름은 중도(中都)였다.


남송(南宋)을 정발한 몽고의 쿠빌라이가 중국을 통일하고 북경을 수도로 삼았는데 이 때의 이름은 대도(大都)였다. 이 후 약 100년 쯤 뒤 14세기 중반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웠을 때 북평이라 부르다, 명의 성조(成祖) 때에 붙인 이름이 북경이다.

만주에서 발흥한 누루하치의 청(靑)은 산해관(만리장성 동쪽 끝)으로 중국에 들어가 북경에 정도하였고, 현재의 중국은 1912년 중화민국을 건국하고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연나라 시기를 빼고도 북경은 금, 원, 명, 청, 중화인민공화국 다섯 국가가 수도로 삼아 800여년에 달하는 전쟁과 정권 쟁취의 역사가 점철된 역사가 들어 있다.

1368년 한족이 세운 명나라는 북쪽 변방 방어를 강하시키고 정권 안정을 도모키 위해 북경에 도읍했지만, 반면 비한족 세운 요, 금, 원, 청, 비나라는 모두 중원의 한족을 정복하기 위한 거점으로 북경을 수도로 삼았다.

청나라는 후일 청조(靑祖)의 발상지를 보호하려 한족의 만주 이전을 반대하였으나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팽창세력을 막기 위하여 정책을 바꾸었다. 러시아의 접경지역까지 한족을 이주케 하여 훗날에 있을지 모를 영유권 분쟁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1920년 이후 중국의 한족들은 매년 100만명 이상이 만주로 이주해 들어갔다고 한다.북경 동북쪽에 위치한 동북 3성은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으로 나뉘어져 있다. 보통 우리가 만주라 부르는 이곳은 황량한 기후를 가졌지만 비옥한 평원과 풍부한 산림자원, 지하자원 때문에 20세기 초 내지(內地)의 한족들이 몰려들어 현재 동북 3성은 한족들이 토박이 비한족 보다 압도적인 인구비율로 형성돼 있다.

그렇다고 그곳에 있었던 역사가 바뀌는 건 아니다. 중국의 한족들이 쓴 사서(史書)가 말해주듯이 요녕성은 고조선의 영토였으며 요하가에 왕검성이 있었고, 고구려의 미천왕이 북경 코 앞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던 사실(史實)이 있는 요녕성의 현재 수도는 심양이다.길림성은 몽골 접경지역서 우리의 고대국가 부여와 고구려가 발생하였으며 지금의 수도는 장춘이다.

흑룡강성은 중국 가장 동북쪽에 러시아와 크게 접경을 이곳으로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토착민들을 모아 한 때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국가 발해를 세운 지역으로 지금의 수도는 하얼빈이다.

북한의 대동강 유역과 요동반도, 멀리 흑룡강가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이
중국의 그것과 사뭇 다른 것은 민족과 문화가 달랐음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 사서가 중국과 다른 고조선의 역사를 편린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 발해를 형성한 인종들이 중국 내지를 넘나들며 요, 금, 원, 청을 세웠다고 많은 중국 사서들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 발해는 중국 내지인들의 국가와는 다른 전통 풍습, 언어, 문화를 간직했던 별개의 국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대부분의 현 중국 조선족들이 1800년대 중반 이후에 한반도로부터 이주한 한국인들이듯이 중국은 50여개의 인종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동북 3성은 여러 비한족들의 나라 고조선, 고구려, 부여, 발해가 발흥, 성장, 패망한 곳이지만 중국에 동화된 조선, 예맥, 숙신, 동호, 부여, 고구려, 선비, 말갈족 등을 끊임없이 부흥시켜 중국의 내지로 진출시킨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자부심으로 삼아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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