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Frances’ 그녀를 만나고

2004-09-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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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춘(무역업)

중부 플로리다를 폭군같은 ‘찰리’가 휩쓸고 지나간 3일 후 올란도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동안 곳곳의 신호등은 먹통이었다.
8월 13일 밤, 시속 105마일로 플로리다 서남부 푼타고다항에 상륙하여 올란도를 거쳐 동북 해안으로 거치는 한시간 반의 피해는 잠정 집계 150억달러에 이른다 한다.

한시간 반 동안의 융단폭격과 같은 광란의 질주였다고 한다.
집안의 목욕탕에서 은신하여 겪은 어느 사람은 지붕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한다.


엄청난 공포를 심어주고 간지 3주일이 못되어 예쁜 이름을 가졌으나 무서운 4급 태풍이 다시 몰려온다니 이곳에 상주하는 주민은 다시 한 번 고역을 치러야 할 판이다.

각 TV방송마다 프랜시스의 궤적을 바하마 제도부터 예상 진로를 그려댄다. 카테고리 4는 풍속 150마일이라니 그 세력이 줄지 않고 그대로 들이닥치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다행히 몰려오는 진행 속도가 시속 7마일 정도로 서서히 다가온다니 이곳 주민들은 여유를 가지고 나름대로 대비를 하였다.넓은 테이프를 유리창에 바르는 사람(사실 이 정도는 아무 도움이 안됨), 합판을 창문에 대고
못질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목재상이나 홈 디포는 합판이 이미 동이 나서 다음 트럭이 배달될 때까지 몇 시간씩 기다린 다음에야 몇 장의 합판을 구할 수 있었다.

태풍이 이곳까지 오려면 아직도 이틀이나 남았는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30분마다 그 진로를 점치고 대피 요령, 쉘터(대피소) 위치, 준비사항을 챙기라고 반복한다.태풍의 눈으로부터 백여마일 거리가 있는 플로리다의 중심 올란도는 맑은 하늘, 상쾌한 바람이 인다. 문을 연 골프장에는 한여름임에도 골프를 즐기는 골퍼들이 태풍이 온다는 사실은 남의 집 사정으로 여기는지 걱정이 없는 모양이다.

각 TV 방송은 저마다 예상지점 해변가에 카메라를 대놓고 특종 장면을 경쟁적으로 노리는 것 같다.예상 시간이 되니 TV 화면은 케이프 캐나베랄 스페이스 센터 남쪽의 Vero 비치에서 몰려오는 구름떼를 잡아 비추어 준다. 재색 바탕 위에 흰구름이 겹쳐 있고 그 앞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 있는 장면이다.

오색 무지개는 상서로운 일을 상징하는데 프랜시스는 그 음흉한 속내를 무지개로 감싸고 먹구름과 비바람을 거느리며 서서히 다가온다.
방송은 이런 규모의 태풍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큰 규모의 태풍이라고 하며 그 진로를 예상하며 화면에 그려낸다.

일몰과 비바람이 동시에 오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기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쯤 지나 정전이 되었다.
예비한 손전등으로 밖을 비추어 보니 빗줄기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180도 옆에서 날아온다. 바람은 쇳소리를 내며 유리창문을 두드린다. 언제 유리문틀이 확 밀려 들어올지 겁이 나기 시작한다.
건전지로 작동하는 라디오방송도 수시로 끊긴다.

대비가 철저한 방송국도 전기 사정이 안 좋은 모양이다. 몰아치는 비바람의 속도가 강약을 되풀이 한다. 내일을 위하여 잠을 자 두어
야 하는데 깊은 잠이 들지 않는다. 아침이 밝아오고 한참이 지나니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그 반가움이라니... 비바람은 9월 4일
에도 하루 종일 계속된다.

허리케인은 쿠바나 바하마 제도에서나 피해를 입는 줄 알았는데 1992년 마이애미 지역을 강타한 후 또다시 세계 최강국 미대륙의 꼬리를 집어들고 패대기 쳤다.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아직도 태풍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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