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올-인(All-in)

2004-09-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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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부 부장대우)

올해 정월초하루 캐나다에서 보도로 국경을 넘어 미국 워싱턴주 한 농가 헛간에 숨어 수송차량을 기다리던 한국인 12명이 미 국경수비대 요원들에 체포된 사례를 시작으로 한국인들의 밀입국 체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9월4일 오전에는 정월 초하루에 사건이 발생한 인근 지역에서 한국인 11명이 또 다시 검거됐다. 이들 중에는 아버지와 미성년자 자녀가 포함돼 있었다.


미 사법당국에 적발되는 한국인 밀입국자는 주로 뉴욕, 로스엔젤리스 등 유흥업소에 일하기 위한 여성들이 한국, 캐나다, 또는 멕시코, 미국을 연결한 국제 조직의 알선으로 국경을 넘다가 적발되는 게 주종을 이룬다.

그러나 4일 발생한 사건에서 보면 단순히 유흥업소 종사 목적의 여성이 아니라 보통 한국인도 많이 미국 밀입국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한국인 부부가, 부부와 어린 자녀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밀입국을 시도하다 적발되는가 하면 때로는 이미 미국에 밀입국한 부모가 돈을 모아 알선 업자들을 통해 어린 자녀들을 몰래 들여오려다 국경에서 아이들이 체포되는 사례도 있다.

또 이들이 체포되는 상황을 볼 때 개조된 차량의 개스통에 숨거나, 야간 투시경을 착용한 가이드를 따라 한밤중에 깜깜한 숲속을 걸어 오거나, 단순 추방이 아닌 미 사법당국의 형사 처벌이 가능한 영주권과 운전면허증 등 위조 서류를 이용하는 등 생명 또는 자유를 빼앗길 수 있는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 아프다.

한 가장이 자신의 부인과 어린 자녀의 미래를 밀입국이라는 범법 행위에 ‘올-인’(All-in) 한 다는 것을 볼 때 그 가족이 한국에서의 삶, 또는 미래에 얼마나 커다란 좌절, 실망, 회유, 절박감을 느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는 최근 해외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한국 국민이 미국에 18만2,821명, 캐나다에 10만명, 일본에 4만6,425명 등 총 3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물론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발표한 통계다.

한국 정부가 왜 수많은 한국인들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기를 쓰고 해외로 떠나는지 조사, 분석할 때 국가적 망신인 밀입국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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