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구슬이 서 말이라도

2004-09-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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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가을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지역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봇물이 터지듯 열릴 기세이다.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임을 절감한다. 개별적으로, 혹은 단체가 그동안 모아온 노력의 결과를 공개하려는 계획들이다.

무엇인가를 모으는 것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흩어진 것을 한 곳에 합쳐놓는 것이고, 한 곳에 집중시키는 일이다. 모으는 것이라면 취미에 따라, 재능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결과가 나타난다. 이렇게 모으는 작업은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절차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이 모이면 전시회를 열게 된다. 그 전시회는 발표회로 그치지 않고 하나의 도약대가 된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연주할 곡목을 모아서 음악회를 연다. 이 음악회 역시 그동안의 노력을 공개하면서 새로운 앞날을 연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이 많이 모이면 책을 내고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 이 과정 역시 하나의 매듭을 짓는 것과 동시에 새
길로 나가는 출발점을 이룬다.

어떤 박람회를 연다면 그것이야 말로 목표로 하는 물품을 다년간 수집하여 일정 기간 일반에게 보이는 것이다. 수집하는 열기와 경제적 뒷받침이 없이는 이루기 힘든 일이다.

지난번 신문지상에 공개된 ‘거북선’ 그림은 고서화를 수집하는 일이 없었다면 얻을 수 없었던 쾌거이며 역사의 발굴이었다.
오랜동안 조용히 연습 기간을 쌓아온 연극인들이 무대 공연을 가지게 되고, 꾸준히 준비 기간을 가진 추석잔치 준비위원회가 드디어 당일의 행사 예정을 발표하는 것도 가을의 문턱 9월이다.

각급 학교가 시작하는 미국의 9월은 마치 새 해를 맞이하는 정월 같은 느낌을 준다. 노동절 휴가 이후 시작하는 사회생활에 새로움이 감돌기 때문이다. 여름동안 느슨하게 풀었던 마음을 다시 죄기 때문인 듯하다.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여름처럼 모든 것이 마음대로 흩어져 있을 동안은 사물의 진가를 나타내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들을 분류하여 모으게 되면 정리가 되면서 값어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며, 속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를 생각한다.
네살 된 어린이가 키 체인을 모으기 시작하였다고 알려왔다. 그러니 혹시 재미있는 것을 보면 자기에게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수집하는 방법이다. 갓 학교에 들어간 어린이가 커다란 상자에 공부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좀 더 큰 학생이 자기의 성적표와 상장을 한 곳에 모으고 있다.

어린이들이 흔히 모으는 것을 보면 우표, 그림엽서, 인형, 티 스푼, 펜, 색종이, 카드, 책, CD … 등 생활 주변에서 얻기 쉬운 다양한 것들이다. 그들은 취미에 따라 이것 저것 모으면서 즐겁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수집한 물건의 가치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수집하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어린이들이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자녀들이 자기 스스로 수집할 물건을 정하고 그것을 어른에게 알린다는 것은 이제 자기 사업을 시작하였으니 협력을 바란다는 신호이다. 그들이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하겠다. 이런 활동이 학생 자신의 성장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일기 쓰기다. 매일 쓰기로 결정하면 ‘쓰기 싫다’ ‘쓸 것이 없다’라고 쓰더라도 계속하여 기록하는 버릇을 키우는 것이 좋겠다.

또 생각 날 때만 가끔 쓰는 것이라면 일기라고 하기 어렵지만 솔직한 느낌을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겠다. 그들은 교사가 일기 읽는 것에 항의한다. 일기는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일기의 날짜만 읽어도 좋다.

일기 쓰기를 시작하여 계속 쓰게 되면, 약속을 지키고, 인내심을 기르고, 기록하는 습관과 글을 쓰는 힘이 길러지며 점진적으로 하나의 글 모음이 될 것이다. 일기 쓰는 방법은 학생의 능력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어린 학생은 ‘그림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작은 것이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된다.

9월 새 학년 초에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는 부모·교사가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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