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애마(愛馬)

2004-09-07 (화)
크게 작게
김명욱(목회학박사)

나는 나의 애마(자동차)를 타고 동부에서 서부를 왕복한 적이 있다. 1996년 4월이다. 애마가 3살 때였다. 대학원 마지막 논문을 패스하기 위해 휴가를 얻어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다. 콜로라도 록키 산맥을 넘으려니 폭설로 고속도로는 차단돼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도착할 마음으로 경찰이 제지하지 않는 로컬 길로 들어섰다.

폭설에 시야가 막혔다. 길을 잃었다. 다행히, 아스팔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그대로 달렸다. 한시간을 달려도 동네가 나오지 않았다. 기름을 충분히 넣지 않고 폭설 속으로 들어선 내가 잘못이었다.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폭설 속에서 헤매기를 다섯 시간. 기름은 거의 동이 나 있었다. 동네가 나타났다. 애마와 함께 살아났고 정이 들기 시작했다.


애마가 11살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애마가 아프다고 했다. 경고등이 들어온 것이다. 배터리와 브레이크였다. 얼마 전 엔진 경고 등에 불이 들어왔는데 몇 달을 타고 다니다 고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정비소엘 가질 않고 집으로 갔다. 하루밤 잠을 잘 잤다.

일요일. 맨하탄을 나가는데 애마는 또 아프다고 했다. 계속 경고등이 들어왔다. 라디오 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한다. 전날 저녁 애마는 잠을 못 잔 모양이다. 그래도 무시했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맨하탄을 들린 후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건너 팰리세이드 파크웨이 북쪽 고속도로를 탔다.

속도 계기판이 가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출구 5S. 그런데 애마가 쿨렁대기 시작했다. 계기판이 떨어졌다. 애마는 점점 더 아픈 모양이다. 애마는 달리다, 걷고, 기어간다.

출구 5N이다. 조금만 더가면 5S다. 따라오는 차들이 난리다. 다행히 작은 사이드 길이 나오는 곳까지 애마는 나를 태워가더니 서고 말았다. 발에 족쇄가 채워진 기분이다.

자동차를 열어 보니 충전기 연결 벨트가 끊어져 달아나 버렸다. 목적지의 스님에게 급히 전화를 넣었다. 고속도로 주변이라 자동차들이 쌩쌩 거리며 달린다. 약 30분 가량을 서성이며 서 있었다. 그동안 수 백대의 자동차가 지나갔다. 한 대가 멈추었다. 흑인이었다.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벨트가 끊어졌다”고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가버렸다.

스님은 트리플A 카드를 청년에게 지참시켜 차를 보내주었다. 견인차가 왔다. 애마는 나약에 있는 정비소에 맡겨졌다. 일요일이라 정비사는 없었다. 애마를 그곳에 놔두고 사찰로 돌아왔다. 스님의 도움이 고마왔다. 이날 플러싱에서 3시에 어느 목사랑 또 약속이 있었다. 마침 사찰 신도의 차에 동승하여 플러싱까지 나왔다. 목사를 만나 양해를 구했다.

커네티컷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지만 취소했다. 견인차를 불러 애마를 찾으러갔다. 애마를 싣고 노던 블러버드 선상의 일요일 여는 정비센터로 돌아왔다. 아픈 곳을 치료하고 나니 밤 10시였다. 애마에 앉아 시동을 거니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애마의 병이 나은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 길. 애마는 신나게 나를 태우고 달리는 것이었다. 정이 더 들었다.


지난 토요일 일을 생각하며 느낀 점들이 있다. 비상시를 대비해 트리플A 같은 서비스 카드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일년에 한 번씩 내는 수수료에 연연할 필요 없이 반드시 지녀야 할 것 같다. 앞차가 느리게 가면 짜증을 부리곤 했는데 짜증내지 말아야겠다. 오죽하여 자동차가 아프면 느리게 갈까.

고속도로에서 가끔 서 있는 차를 지나쳤는데 이제는 그 흑인처럼 서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해야 되겠다. 그 흑인은 나를 도와준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또 자동차 경고 등에 불이 들어오면 무시하지 말아야겠다. 바로 정비소를 찾아가 점검을 받아야겠다. 아니, 자동차는 평소에 점검을 자주 해야만 하겠다.

월요일. 애마는 나를 태우고 직장엘 잘 태워 주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11 살 된 애마를 갈아치우고 싱싱한 새 말을 사라 한다. 그러나 정이 너무 들었나 보다. 갈아치울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또 다시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는 그 때다. 애마가 더 이상 기력이 없어 뛸 수가 없을 때까지 함께 가고 싶다.

자동차는 쇠 덩이다. 그러나, 11년 동안 함께 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생사고락을 11년씩이나 한 나의 애마가 앞으로 더 몇 년을 함께 할지. 주인을 위해 말없이, 조건 없이 봉사하는 나의 애마. 고마울 뿐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