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속주 한잔에 시름을 잊어보자

2004-09-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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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보스턴)

인류 최초의 술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세계인이 마시는 술이 되었는지 알아봄이 어떨까 싶다.지금도 바티칸궁 스시티나 대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손에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큰 술통 옆에 쓰러져 있는 ‘노아’의 어지러운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여명기인 오랜 옛날 사탄의 꾀임에 빠져 포도나무를 심었던 ‘노아’는 양과 원숭이, 사자와 돼지를 잡아 그 피를 포도나무에 뿌렸다고 한다.


그 일 때문에 지금도 서양사람들의 우화 속엔 음주량에 따라 사람들이 취해있는 모양을 동물에 비유하고 있다. 술을 적게 마신 사람은 원숭이처럼 익살도 부리고 양처럼 온순하게 보이지만 지나치게 많이 마신 사람은 사자나 돼지처럼 분수를 잊고 사납게 날뛰는 짐승으로 비유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땅에 처음 술이 들어와 퍼지기 시작한 것은 1607년이라고 한다. 지금의 버지니아에 식민지 개척에 나선 당시의 영국 이민자들은 모두가 기독교를 신봉하는 크리스찬이면서도 술을 즐겨 마시는 술꾼들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이 건국된 후에도 미국사회는 술과 마약이 범람하여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되자 1920년 금주법을 공포함으로써 미국은
술 없는 나라가 되었다.

비록 술의 유통이나 마시는 일이 법으로는 금지되었으나 밀수를 둘러싼 막대한 이권 싸움은 유명한 알 카포네의 악명을 불러 일으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연간 10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조세수입 감소를 가져오는 국가적 손실을 겪었던 것이 금주법 시행 이후의 미국사회였다.

세계 어느 나라마다 그들 고유의 술이 있다. 우리 민족에도 전통과 멋을 이어온 고유의 민속주가 있다. 일제 하와 해방을 맞으면서 부족한 식량난 때문에 곡식으로 술 빚는 일은 법을 어기는 일이 되어 지방마다 지키며 전해져 온 민속주들은 그 맥이 끊기는 듯 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선 쌀을 비롯한 식량이 남아돌면서 굶주림을 겪는 북한동포에게도 쌀을 보내고 쌀로 빚은 여러 종류의 술들이 지방행정 관서가 지원하는 장려상품으로 지정되어 TV나 신문지상에 민속주란 이름으로 선전되어 많은 술꾼들의 취향을 북돋고 있다.

더욱 우리나라 술은 술 빚는 방법이나 전해져 내려오는 술맛이 지방마다 다르다는 것이 특색이다.고려 때 대동강물로 빚었다는 문배주가 있는가 하면, 조선조 때 경주사람 최국준이 교동 자기 집에서 빚은 ‘교동 법주’, 진달래꽃으로 빚는 충남 당진의 ‘두견주’, 요즘에 와 많이 듣고 있는 ‘백세주’, ‘산사춘’ ‘금산 인삼주’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름의 민속주들이 상품화되어 이곳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쉽게 우리의 전통 술맛을 맛보고 있으니 세상 사는 맛,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 아닌가 싶다.

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미 동부에도 9월의 하늘은 드높기만 하다.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들바람에 작은 채마밭에 심은 고추, 호박이 탐스럽게 영글고 있다.

그 옛날 무리지어 안암골을 누비며 도수 높은 소주나 막걸리 타령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추억이 그립다. 퇴근 후 청진동 왕대포집에 둘러앉아 막 빚어 만든 우리의 술 막걸리로 한여름 복더위를 식히던 그 때 그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득히 잊어진 옛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보는 노객의 눈가엔 눈물이 고인다. 민속주 한 잔 술에 한여름의 시름을 잊어버리고 싶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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