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문이 막혀버렸다

2004-08-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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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녀(수필가)

퇴근시간이 되었다. 집에 가기 이해 벗어두었던 겉옷을 걸치려고 들어올렸다. 쨀그랑하고 동전이 바닥에 떨어진다. 줍다 보니 한국 100원짜리 동전이 끼어 있다.

약간 언짢아진다. 배추 한 포기, 생강 한쪽, 파 2단 해서 3달러68전이라고 했는데 20달러짜리에서 거스름 잔돈이 10달러짜리 하나 하고 5달러짜리 하나, 그리고 동전을 받았다. 1달러짜리 하나가 더 있어야 하는건데 하면서도 내 귀가 벌써 망령이 들었나보다 하고 그냥 주는대로 받아가지고 오면서 자꾸만 내 귀를 걱정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다음날 그 식품점엘 다시 들렸다. 맨하탄에서 제일 큰 한국식품점인데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직원을 돈을 만지게 했다는 일이 그냥 ‘괜찮아’라고 보아 넘기는 일은 아니된다 싶었다.

매니저를 만나야겠다고 말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계산대의 한 종업원이 묻기에 불평한 일이 있다고 하니 불러준다. 동전이 한국돈이었다는 것과 영수증을 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거스름돈 액수에 차이가 있었다고 말을 했다.

첫 마디에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동전은 거래처 한인은행에서 바꾸어 온 돈일거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지만 손님에게도 그렇게 한 것이 잘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액수도 적은 것이고 또 동전을 모으기도 하니까 그 동전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나였지만 쉽게 넘겨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영수증은 ‘달라고 했어야지요’라
고 한다.

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뒤에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고, 영수증은 거스름돈과 함께 으례히 있겠지 하고 바삐 장 보따리를 들고 나온게 손님 잘못이란다. 액수에 대해서는 영수증이 없으니 말은 못하지만 아직도 내 귀가 의심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말을 주고 받다 보니 기분이 더 찜찜해진다. 타이르기로 마음을 정했다. 결국 미안하다는 사과는 받아냈지만 엎드려 절 받기였다는 느낌이었다.
식품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계산상의 오차라던가, 불친절 같은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위에서 많이 들었노라는 이야기도 하고... 특히 맨하탄에서는 우리 한인들만 드나드는 식품점이 아니고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인 걸 당신이 잘 아니 직원들을 잘 훈련해 주길 바란다고 부탁을 하고 나왔다.

며칠이 지나도 그 일은 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마도 신체적인 노쇠현상에 대한 불안감에서이었는 지도 모른다. 또 식품점에 들려 지난번과 똑같이 배추 한 포기, 생강 한쪽, 파 두 단을 사 보았다. 배추 크기가 전보다 더 큰 것이었으니 값이 더 나가야 할 터인데 그렇질 않았다.

내 귀가 아직은 그렇게 나빠지진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되어 혼자 기분좋게 웃었다. 그리고 장 보따리는 잠에 취해 기차를 바꾸어 타면서 깜빡 잊어버리고 기차 속에 놓고 내렸기에 또 한바탕 웃어 넘겼다.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불친절하다는 인상은 장사에 손해가 날 짓이다. 더 나아가서는 타인종에게는 한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키워주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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