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철봉에 놓고 내린 금메달

2004-08-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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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석(뉴욕그리스도의교회 목사)

한국이 남자 기계체조 개인종합에서 역사적인 금메달을 다 잡았다가 편파 판정으로 놓쳤다는 지적으로 네티즌과 체조계가 아우성이다.

이 날 금메달을 따낸 폴 햄은 4번째 종목이었던 도마에서 착지시 왼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세 발짝이나 옮기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예 매트를 벗어나 심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 앞까지 밀려나가 철퍼덕 주저 앉았었다. 그러나 햄이 받은 점수는 9.137점, 치명적인 실수를 한 것 치고는 점수가 너무 후했다.


한 외국기자는 햄이 마지막 철봉경기에서 24명 결선 진출자 가운데 가장 높은 9.837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확정짓자 ‘원더풀 코미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해 금메달을 따낸 햄 스스로도 ‘너무 행복하지만 사실 충격적이었다’며 ‘그런 큰 실수를 하고도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의외의 ‘횡재’에 놀라
워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양태영 선수는 ‘평행봉을 마칠 때까지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약간의 자만심이 나의 큰 잘못이었다’라고 고백했다. 평행봉, 링, 안마 등 6개 종목의 실력을 겨루는 경기에서 5번째 시기가 끝났을 때 양태영은 합계점수 48.299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금메달을 딴 미국의 폴 햄 보다 0.313점이나 앞선 점수, 마지막 철봉에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양태영 선수의 철봉 연기는 밋밋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평범했다. 결과는 9.475점. 그가 받은 6개 종목 점수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였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낫다.

미국의 폴 햄은 신기에 가까운 고난도 연기와 완벽한 착지로 관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9.837점, 단숨에 금메달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음의 결과이다.

1936년 LA올림픽 육상 5,000미터 결승 경기, 핀랜드의 라우리 라티넨과 미국의 랄프 힐이 접전을 벌였다. 결성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라티넨이 한 발 앞서 달렸고 그 뒤를 힐이 바짝 추격했다. 힐이 사력을 다해 라티넨을 앞서려고 바깥쪽으로 빠져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라티넨이 힐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멈칫하던 힐은 다시 방향을 고쳐 안쪽으로 추월하려 했다. 그러자 라티넨이 또 그쪽으로 몸을 트는 것이었다.

주춤할 수 밖에 없는 힐이었고 그렇게 라티넨과 힐은 거의 동시에 골인했다. 사진 판독 결과 라티넨의 우승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야유의 함성이 이는 것이었다. 달리기 경주에서 앞지르려는 선수의 길을 막으면 실격으로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관중들이 라티넨의 우승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힘이 달려 비틀거렸을 뿐인 라티넨은 관중들이 왜 소란을 피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필름을 보고서야 당시의 상황을 알게 된 라티넨은 그 즉시 힐에게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그러나 힐은 오히려 민망해하며 라티넨의 우승을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시상대에 올라서 였다. 라티넨은 힐을 한사코 맨 윗자리로 미는 것이었다. 우승자는 자기가 아니라 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힐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사양하는 것이었다. 둘이 보인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에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 두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우승의 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를 높이던 라티넨과 힐, 그들의 정신이 오늘 그리워진다.축구공은 모두 1,820회의 바느질을 거쳐야 완성된다. 외피의 각 조각을 꿰매는 작업은 전혀 기계화되지 않았다. 숙련된 기술자가 2시간 동안 꿰매야 축구공 하나를 만들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

선수와 영웅은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겸손하고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 때문에 위로를 받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통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또 하나의 올림픽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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