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기현상의 시대

2004-08-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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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올 여름은 정말 날씨가 여름인지, 가을인지 모르고 살고 있다. 그 바람에 여름옷 장사나 아이스크림, 소다, 해변용품, 또는 가전용품 장사들이 제대로 대목도 못보고 가을을 맞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여름은 무더웠던 게 한, 두 차례나 될까, 복중에도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고 아직도 한창 더워야 할 시기에 벌써부터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여름도 없이 가을전주곡이 들리는 것이다.


이런 기상이변을 보면 자연 지구촌의 환경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흔히 거론하는 지구의 위기론, 즉 종말론이 대두되는 것이다. 물론, 기상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간의 변화이지 큰 변화는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피부로 느껴지지는 않지만 환경론자들은 하늘에 구멍
이 뚫린 위기 상황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자외선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 오존층이 급격히 감소되면 식물이 잘 자라기가 어렵고 가축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인간도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암에 걸리고 망막이 파괴되며 결국 시력까지 감퇴된다. 인체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전염성 질환을 악화시킨다.

그러므로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는 파괴현상은 지구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인간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자연 생태에서 더우나 추우나 정확히 계절에 맞춰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지열은 그대로 유지되는 모양이다. 단지 상공의 공기, 즉 공기오염이 문제다. 환경론자들은 이 공기오염에 대단한 위협을 느끼며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성경에 보면 종말론에 매미냐, 메뚜기냐 하는 문제가 거론돼 있다.

버지니아 교외 같은 북미지방에 가보면 땅에 구멍이 뚫려있어 그 속에 매미가 알을 깐 후 17년간 잠을 자고 나서 구멍을 뚫고 나온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뭇잎에 징그러울 정도로 무수히 달라붙어 한꺼번에 ‘쐐’ 하고 쇳소리를 내면 너무나 징그럽고 끔찍할 정도로 무섭다고 한다. 아프리카도 메뚜기 떼 때문에 엄청난 수난을 겪고 있다 한다.

안 그래도 빈곤한 나라에 이런 재앙까지 겹쳐 상황이 매우 심각한 모양이다. 이러한 자연재해는 펄벅의 작품 ‘대지’에도 구름처럼 몰려오는 메뚜기 떼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 잘 묘사되어 있다. 성경에도 매미인지, 메뚜기인지 곤충이 떼를 지어 마을을 덮친 구절이 있다. 그것을 종말의 신호라고 한다.

이걸 보고 일부에서는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론을 들먹이며 예시시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환경이나 자연재앙 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이 대단히 경시돼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예사요, 그것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정도로 그 수법이 잔학해졌고 인간을 마치 파리목숨처럼 취급, 연쇄적으로 살육하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없어졌다.

지구의 위기는 우선 환경문제나 현실적으로 메뚜기 떼 같은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천시되고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세요, 위기다. 요즘 언론에는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지구촌에는 얼굴 없는 전쟁으로 세상이 더욱 뒤숭숭, 밥 먹기도 어렵고 인심마저 냉랭해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를 펴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중압감만 가지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미국의 현실도 예전과 같지 않고 지배적인 불안요소로 인해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 긴장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고도로 발달된 문화와 문명의 충격 속에서 살고 있다. 그걸 따라 가려니까 모든 것이 버겁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삶을 포기하고 싶고 비관적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분
명한 것은 내일 지구촌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우리는 열심히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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