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테네의 열기

2004-08-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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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이 여름은 아테네의 올림픽이 있어서 즐겁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행사는 1896년에 제 1회 근대 올림픽이 다시 시작된 당시를 회상케 한다. 개막식에서 보인 고대 올림픽의 나체 경기를 재연한 남성들, 시상식에 나타나는 고전의상의 여성들 모습은 옛 일을 되살리게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고대 올림픽 경기는 나체로 진행되어서 여자들은 구경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녀가 세계 방방곡곡에서 텔레비전으로 실황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올림픽 경기장은 축제의 마당이다. 젊음의 열기를 뿜어내는 각종 경기 선수들과, 승리를 거두려고 응원하는 관중의 환호성이 어우러져서 여름날을 즐겁게 한다. 올림픽은 경기를 하되 전쟁터는 아니다.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되 규칙에 따르는 기술로 서로 대항한다. 경기의 목적은 평등·자유·평화인 것이다. 올림픽의 이상은 건강한 몸·아름다운 마음·사회를 위한
봉사의 세 가지이다. 이 행사는 인류가 함께 행복한 세계를 만드는 바탕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은 평화의 잔치이다.

이 대회 참가 선수들은 경기에 이기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정당하게 싸우는 데 있다.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표정을 보더라도 다년간 연마한 기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흐르지만 상대방을 혐오하는 얼굴은 아니다. 그들의 각종 기능은 노력의 결정체(結晶體)이다. 따라서 경기의 승부는 대체로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결정된다.

승부가 결정되면 그들은 결과에 승복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서로 우정의 악수를 하거나 때로는 서로 얼싸안고 상대의 등을 쓰다듬는다. 가끔 시상대에서 금·은·동 수상자들이 어깨동무를 한다. 그들은 서로의 심리 상태를 잘 이해하면서 우정을 나누는 것이다.

경기의 결과인 승부는 오직 선수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이 관중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도 하고 가라앉히기도 한다. 승부에 초연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얼마동안 결과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이런 느낌 또한 경기를 보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올림픽에는 아름다운 볼거리가 많다. 그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은 선수들의 긴장한 표정이다. 제각기 속한 국가 대표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그들을 압박할 것이다. 그동안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를 그대로 순조롭게 발휘하고 싶을 것이다. 만감이 오고 갈 출발점에 선 선수들의 얼굴은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그리고 매번 새로움을 나타내는 선수들의 유니폼은 새로운 감각의 패션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눈에 띈 것은 수영복의 다채로움과 여자 마루체조의 유니폼이었다. 이것들은 국가별 특징을 나타내면서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것이었다. 여기에 따르는 음악·안무 역시 국가관을 과시한 점 매우 흥미롭게 느낀다. 이런 느낌은 시상식에서 연주하는 ‘나라의 노래’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이런 것이 문화의 다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지혜롭다.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픽을 열자는 생각도 지혜의 샘에서 솟아 나왔다. 이 행사는 인류의 이상에 접근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마키아밸리는 ‘빵과 서커스’를 정치의 요체로 심으면서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리하라고 하였다던가. 그런 뜻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올림픽이라는 즐거움이 있어서 삶을 풍부하게 하고 세계인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회가 있다.

요즈음 텔레비전이 미국 일변도의 방송을 하여서 한국 선수들의 활약상을 볼 수 없다는 불만스러움이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다른 팀을 응원하는 일이 종종 있고, 어쩌다 한국과 미국이 겨루게 되면 상대방의 태도에 불만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런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대화의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다. 중국 친구를 만나 ‘오늘 현재 메달을 가장 많이 딴 나라는 중국이더라’고 말했더니 ‘나는 아니고, 그들이 많이 땄다’고 하여서 ‘그들이라니?’ 하고 되물었다. 그녀는 태연스럽게 ‘중국사람들’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고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올림픽이 남기는 낙수이다. 그러나 생각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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