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하도(滿河島)

2004-08-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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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헷갈린다. 만하탄인지 맨하탄인지, 혹은 맨해튼인지 좌우지간 만하탄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불러댄다.창간호를 내는 한미문학가 협회에서 특집으로 엮는 재미있는 주제가 바로 이 헷갈리는 만하탄의 이름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뉴욕에 오신 분들은 만하탄이라고 부르고 좀 살았다 한 사람들은 맨하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거의 미국사람이 다 된 사람들이나 미국사람이 다 된 척하는 사람들은 만하탄을 맨해튼이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부른다고 한다. 하룻밤을 캐츠킬 산장에서 지내면서 우리는 웃었다.

만하탄도 섬인지라 나는 나대로 만하탄을 만하도(滿河島)라고 이름지어 부른다. 우리나라에는 섬이라면 끝말에 도(島)라는 글자를 써서 그곳이 섬이라는 것을 알리기 때문이다. 뉴욕보다는 작지만 한라산을 가운데에 두고 산천을 아름답게 조화시켜 놓은 제주도, 멀리서 보이는 검스름한 흑산도를 거쳐 시간 남짓 더 가면 황혼에 얼굴을 붉히면서 저녁 잠자리에 들려고 아랫도리를 씻는 홍도, 심청이의 울음소리 섞여 들리는 백령도 파도소리, 외로운 독도, 흉년에 빌려준 양식거리 가파도 말라도 그만인 최남단의 두 섬, 장승같던 할매가 원한가 한 대목 입에 물고 돌리던 연자방아 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들린다. 아름다움이 내 눈에 들린다.


그 뿐이랴! 살림살이 가난해도 봄꽃이 먼저 오는 남해의 작은 섬들이라든지, 분명한 바다이건만 호수같은 수면 위에 쓰러질듯 지어놓은 작은 정자 모양의 섬들을 모두 모아 차라리 한 마디로 불러보는 한려수도. 예뻐도, 살아도, 미워도, 죽어도, 띠어도, 가도, 와도, 손을 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섬들의 한글 내용이다.

사람들은 뉴욕을 경제 도시라고 본다. 그러나 뉴욕은 경제 보다 문화에 문수가 더 넓은 신발을 신고 있다. 불란서 파리의 몽마르뜨와 엇비슷한 소호의 거리, 세느강 보다도 화려한 물결의 허드슨강, 그러나 그것보다도 아! 사람이 많은 도시, 고층건물 이마 마다 아낌없이 뿌려도 줄지 않는 저녁노을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파들, 만하도 작은 섬에 눈동자를 반짝이며 생활을 이끌고 가는 저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이름을 달아줄까?

이름으로 인간은 하나이지만 살색이 다 다른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하도는 쉬지 않고 항해를 한다.5번가에서 식당을 하다가 미국의 불경기에 무릎을 꿇고 나는 크게 실패를 한 적도 있지만 만하도의 서정과 희망을 나는 잊지 않는다.

만하도 자체는 자연적이나 만하도를 출렁이게 하는 행위는 인위적이다. 문학과 예술이 그러하듯 거기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일 때 똑똑하지만 여럿이 어울릴 때 방향감각을 찾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좋은 방법을 얻기 위해서는 옆에서 동행하는 참다운 친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고, 위로는 섬기는 스승 한 분쯤은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성공하면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랫사람 한 사람쯤은 있어야 한다.

과일은 나무가지 밑에서 열리지 나무가지 위에서 열리지 않는다.눈 깜짝 할 사이에 이민생활은 많이 갔다. 다시 말해서 세월은 우리더러 섰지 말라 하면서 등을 떠밀었고 구름은 따라오라 하면서 우리를 끌고 왔다. 이민이란 똑같은 짐을 너도 지고 나도 지고 살아온 우리에게 만하도는 패자의 한숨과 승자의 웃음소리를 따로따로 갈라놓는다. 그것이 원망할 수 없는 현실이고 결과를 짊어지고 가야 할 생활인 것이다.

비바람이나 가뭄을 싸우지 않고 피해 간 사람은 패자가 되고 땀을 흘리며 땅을 판 자는 물을 얻는다. 만하도가 우리를 관찰하며 비웃는 무심한 사람이 되지 말고 우리가 만하도를 관찰하며 전진해야 되지 않을까. 바라보는 노을이 아름답게 산을 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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