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친구는 모두 어디로?

2004-08-1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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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커네티컷)

수일 전 커네티컷주에서 10여년을 주지사로 근무한 후 부정관계로 인하여 근 1개월 전에 사임한 존 로울랜드가 탄핵소추를 당하는 입장과 연방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소요된 변호사비 수십만달러의 빚을 갚을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자기를 지지하던 일반 시민들에게 변호사비 기금모금을 위한 간청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 중 그는 자기의 잘못으로 사임한다는 발표와 달리 미디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오해로 인하여 사임을 하게 되었다고 억지를 부리는 모습이 가관스러우면서도 측은한 마음이었다.


이 편지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으며 왜 로울랜드는 이러한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경지에까지 이르렀는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아직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자신의 비애를 남에게 비난하고 있다”라고 의사를 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 시민은 “직장을 구하여 일을 하여 빚을 갚으라. 나처럼 두 개의 직장에서 일을 하여서라도 스스로의 변호사비를 갚으라”고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 하원의회의 의장인 제임스 아만은 “부정의 씨앗이었던 별장을 팔아서라도 변호사비를 갚을 수 있는데 왜 깡통을 돌리면서 동전을 구걸하는 것이냐? 자신의 희생을 도피하면서 아직도 미디아를 비난하는 그의 태도가 번민스럽다”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주 검찰총장인 리차드 블루민털은 “만약 존 로울랜드가 대 여섯명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변호사비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다면 일반 시민들에게 간청하는 편지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라고. 이 사태에 대하여 피력하였던 것이다. 존 로울랜드가 주지사로 있을 때는 돈 많은 사업가들의 친구가 많았을 것이며 덕분의 호화판의 생을 즐겼을 것으로 믿으나 이제 권력을 잃고 무명인이 된 그는 모든 친구를 다 잃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라는 말을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사람, 벗, 친고 또는 친우”라 정의하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 인간은 많은 친구들을 사귀면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친구에게 배반을 당하여 파산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친구를 잘못 사귀어 가정의 파괴 내지는 일생을 망치는 일도 허다한 것을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보고 있는 것이다.

먹고 놀면서 즐거울 때는 모두가 친구이지만 어려운 일을 당하였을 때는 친구가 별로 없어 외로운 생을 살게되는 경우가 있음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써먼 프로이드가 “당신의 전생애를 통하여 진실한 친구 한 사람을 가졌다면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한 말은 과연 존 로울랜드를 지적한 것으로 생각을 하게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가 나사로를 내 친구라 칭하면서 그의 병을 고쳐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친구는 늘 사랑한다”라는 잠언에 있는 말씀과 “나의 명대로 행하면 곧 내 친구라”라는 예수의 교훈이 있지만 우리가 예수의 진실된 친구 되기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이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나 친구를 변함없는 사랑 또는 우정으로 사귀면서 어렵고 슬픈 일을 당하였을 때 도와주라는 말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지? 옛날의 내 친구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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