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2004-08-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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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롱아일랜드)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이름에 얽인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야곱이라는 사람이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이다.

야곱은 자기의 이름처럼 남의 발꿈치를 잡아채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의 유익을 위해 수십 년을 살면서 아버지와 형과 외삼촌을 번갈아 속여가면서 장자권을 탈취했고 외삼촌의 두 딸을 아
내로 삼았고 외삼촌의 재산을 교묘하게 자기의 것으로 둔갑시킨 지능범으로 살아오다가 이만했으면 거부가 되었고 출세를 했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얍복 나루터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하나님에게 축복해 달라고 매달렸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야곱은 얼른 “네,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했으며 하나님은
“아서라, 그 이름 가지고서는 축복을 받을 수 없으니 내가 새 이름을 주리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새 이름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며 그날 이후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인간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살
았기 때문에 훗날 그의 새 이름은 그의 개인의 이름인 동시에 히브리 민족의 이름이요, 한 나라의 이름으로 승격되어 전세계에 퍼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제각기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이름이란 그 존재를 대표하는 명사인 것이다. 더구나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이 지니는 의미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기가 태어나서 맨 먼저 받는 선물은 이름이다. 성장한 후에 가서 간혹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개명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어느 이름이건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명사로서 매우 귀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사람의 이름을 욕되게 했을 때 명예훼손 죄로 기소되는 법률까지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이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이름의 가치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것일까?우리가 미국에 와서 살면서 서양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이름부터 말하는 것에 반하여 한국인들은 자기 이름 대기를 꺼려하고 주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종종 라디오 방송을 듣노라면 청취자들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다.

가령 한국에서 행정수도를 옮기는 일에 대한 의견들, 또는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부시가 좋으냐, 케리가 좋으냐 묻는데 그럴 때 의견을 말하는 사람에게 어디에 사는 누구냐고 아나운서가 물을 것 같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퀸즈에 사는 미스터 김입니다” 또는 “플러싱에 사는 미세스 조입니다”라고 성만 밝힐 뿐,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퀸즈에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자기 뿐이며, 플러싱에 조씨 성을 가진 부인은 자기 뿐이란 말인가?

어느 목사님께서는 전화를 걸 때면 의례히 “나 뉴욕의 박 목사요!”라고 말한다. 도대체 뉴욕에는 박씨 성 가진 목사가 자기 혼자 뿐이란 말인가! 우리의 미풍양속 가운데 하나는 웃어른의 이름을 말할 때 황공해서 이름자 한 자 한자를 따로 떼어서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라도 반드시 성명을 온전히 밝힘으로써(Full Name) 자기가 누구임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인가 꿀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범죄자들이나 전과자들이라면 의당 자기 이름 밝히기를 꺼려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나의 이름 밝히기를 그다지고 꺼려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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