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파리의 연인 신드롬

2004-08-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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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준(취재부 차장)

한국에서 꿈의 시청률이라는 50%를 돌파하며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뉴욕 한인 사회에서도 큰 화제다. 일본 만화 ‘캔디캔디’와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영화 ‘프리티 우먼’을 섞은 듯한 뻔한 스토리인데도 그 반향은 한국과 뉴욕서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파괴적이다.

‘파리의 연인’이 통속적인 소재의 한계를 딛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이유가 무엇일까. 가정부로 일하다 집주인인 재벌 2세와 만나 연애를 하고 더구나 자신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재벌가의 숙질(나중에는 동복 형제로 밝혀짐)인 황당한 인물 설정 등 현실적으로 너무 진부하고 우연이 난무하는데도 말이다.


드라마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대리만족’을 꼽고 있다. 여성들은 돈과 지위가 겸비된 능력은 물론이고 잘생긴데다 노래도 잘 부르며 만능스포츠맨이자 싸움질까지 능숙한 남자주인공 기주(박신양 역)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모든 것까지 거는 로맨틱한 면까지 갖춘 ‘백마 탄 왕자님’의 몸짓, 말투에 넋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남성들은 무조건 여자에게 잘해주었던 과거의 착한 왕자가 아니라 능력을 발휘해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부드럽게 여자를 휘어잡을 수 있는 이 시대의 왕자에 대한 ‘부러움’으로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도 15일 종영을 앞두고 ‘파리의 연인’ 신드롬에 대한 갖가지 해석을 내리고 있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불황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주머니 사정이 빠듯해진 시청자들이 주말 외출, 외식을 삼가면서 시청률이 올라갔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또 언젠가 부자가 우연하게 자신의 고단한 삶을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면서 위로를 맛보기
위해 드라마에 몰두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파리의 연인’은 분명 우리에게 일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옆의 애인과 남편이 문득 시시해지고 애인과 아내 옆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을 드라마는 강요하고 있다. 파리의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며 ‘돈 많은 남자 하나 보내주지’라던 태영(김정은 역)의 소원은 드라마 속에서나 이뤄질 일이다.

‘파리의 연인’은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우울함과 답답함, 지친 삶의 무게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해방구’로서 끝나야지 ‘현실 도피’로까지 발전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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