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파란 불, 빨간 불

2004-08-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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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종교전문기자>

파란 불(미국에선 초록색) 신호등에선 가야하고 빨간 불에선 서야 한다. 질서다. 질서는 법으로 통제된다. 파란 불인데 가지 않고, 빨간 불인데 간다면 질서를 위배하게 된다. 질서를 위배한자는 법으로 제재 받게 된다. 제재는 자유를 박탈한다. 박탈당한 자유는 다시 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금전적 손해 및 신체적 구속도 감수해야 한다.

얼마 전, 아는 후배가 늦은 밤에 운전을 했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 차를 정지시켰다. 그런데 너무 피곤했던지 깜빡 잠이 들었다. 파란 불, 빨간 불, 빨간 불, 파란 불, 얼마가 바뀌었는지 자동차가 나가지 않으니 경찰이 달려 왔다. 경찰이 깨워, 눈을 떠보니 도로 한 가운데였다. 경찰의 심문을 받는 중 음주운전이 발각됐다.


경찰은 자동차를 가져갔고 그의 운전면허는 정지됐다. 그는 제재된 자신의 신분 회복과 자동차를 찾아오기 위해 변호사를 기용해야만 했다. 수개월이 지나며 법정을 오간 후 그는 운전면허를 회복했고 자동차를 찾았다. 그러나, 차를 찾아오기까지 그가 겪은 몸과 마음 고생.

변호사 비용에, 이거다 저거다 숱하게 돈이 들어간 경제적 손실이 대단했다. 그는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 절대로 음주 운전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대리 운전을 시킨다. 혹은 택시를 이용한다. 그게 훨씬 싸고 안전하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돈 몇 푼 아끼려다, 경찰에게 잡히거나 사고까지 나면 그보다 낭패는 없다. 50달러 아끼려다 500달러, 5,000달러, 5만 달러까지 날아 갈 수 있고 우주보다 귀한 생명도 잃어버릴 수 있다.

이 후배는 파란 불에 가질 않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례다. 그러나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음주 중이건 아니건 간에 빨간 불에도 잘 달린다. 어디를 그렇게 빨리 가야 하는지 목적도 없이 달리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사람이 보던 안 보던 신호가 빨갛게 들어오면 무조건 서야 하고 파란 불로 바뀌면 무조건 가야 한다.

그런데 파란 불에서 빨간 불로 바뀌기 전에 경고등이란 게 켜진다. 노란 불이다. 노란 불일 때 이를 무시하고 가는 사람도 많다. 노란 불 일 때는 가능한 한 설 준비를 해야한다. 노란 불이 주는 의미와 경고는 곧 빨간 불이 들어오니 서란 뜻이 담겨 있다. 설 준비를 하게 여유를 주는 것이 노란 불이기 때문이다.

교통신호에만 파란 불, 노란 불, 빨간 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한 평생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가는 길에도 수없이 불이 바뀌며 들어온다. 파란 불이 커져 잘 나갈 때에는 문제가 없다. 그 누구의 제재도 받을 필요 없다. 노란 불이 들어 올 때는 스스로 자신을 제재할 수 있는 자제력을 가져야 한다. 빨간 불로 바뀌었는데도 마구 달려나가면 큰 일을 당한다.

술과 담배를 즐기며 놀기를 좋아하는, 일명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지는 사람에겐 노란 불이 켜진다. 노란 불이 켜지는 것은 건강과 재정에 위험이 따른다는 신호다. 이런 경우 술과 담배를 줄이거나 아예 끊던지, 놀기를 금해야 한다.

그냥 달려나가다 보면 빨간 불에 딱지를 떼일 수가 있다.딱지란 돌이킬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파산을 신청해야할 처지 등이다. 작든 크든 사람은 통제된 질서 안에서 살아간다. 규범이든 법이든 통제된 질서는 따라야만 한다. 교통신호를 따르는 것과 같다.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직장과 사업체에서는 나름대로 따라야 할 내규가 있고 규범이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규범과 법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람을 옥죄려고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교통신호등이 만인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만들어졌듯 규범과 법도도 모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만들어져 있다. 만인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법은 악법이다. 악법을 만들어 계속 자신의 배만 불리며 백성들은 굶겨 죽이는 독재자가 군림하는 곳이 아직도 세상에 존재하긴 한다. 그런 곳에 있는 신호등은 겉은 파래도 속은 빨갈 것 같다.

이런 곳에선 독재자의 말 한 마디가 곧 법이요 신호등이다. 이곳에서 파란 불에 가지 않고 졸고 있었다면 변호사 아니라 그 누구도 빼앗긴 자동차와 제재는 풀어 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생명이 달아났는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타고 운전을 하게 되면 하루에도 수없이 만나는 파란 불, 빨간 불.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만나게 되는 노란 불, 빨간 불, 파란 불. 설 때
는 서고, 갈 때는 가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 통제된 질서지만 질서 안에서 행복을 갈구하며, 제한된 자유지만 그 자유 속에 길이 있고 참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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