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 왜 왔니?

2004-08-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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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일(성은장로교회 장로)

K씨는 새벽 5시30분에 몸도 약한 아내를 그녀의 직장에 데려다 주고 왔다. 두 부부는 60세를 훨씬 지난 나이다. K씨는 아침에 씨리얼이라도 한 그릇 먹지 못하고 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서 속이 울렁거린다. 내일은 꼭 먹여서 보내야지 한다.

K씨는 오후에 아내를 픽업한 후 야간 직장으로 노동을 하러 가야한다. 그래도 K시는 행복해 한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고, 살겠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 주일예배를 보고 달러스토어에서 손녀들에게 줄 선물을 몇 개 골라 샀다.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손주들이 보고싶어서 허전한 마음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리고 언제고 손자들을 만나면 재잘거리면서 선물을 풀어보고 ‘Thank you granma’ 하는 소리에 그동안 자식들에게 섭했던 마음이 눈처럼 녹아버린다.

K씨 부부가 서울을 떠난 것이 30년 전, 남들이 성공했다고 자랑할 때 이들은 항상 열심히 사느라고 남들이 하는 소리도 들을 여유가 없었다.
K씨는 너무 똑똑해서(?) 올바로 살다가 결국 밀려서 쓸쓸한 백조처럼 살 자리를 찾아서 미국에 왔다. 젊은 어린 나이에 초고속 승진으로 큰 회사 전무까지 하고도 더러운 모략 중상으로 판치는 직장을 사표 한장으로 빈털털이가 되어 미국으로 온 것이다.

오자마자 접시닦기에서부터 잡화가게 점원으로 출세했다. 그리고 그는 직장에서 공을 인정받아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차를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미국 직원들의 질투로 또다시 사표를 내게 됐다.

이렇게 30년을 최선을 다해 미국회사 사장까지 지냈는데 회사가 파산하면서 말년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또 직장을 구하러 다녔다. 드디어 창고 야간 노동을 찾았다. 그러면서 처음 한달은 지독한 몸살을 앓으면서 충실히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그 창고에서 없으면 안되는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펴 든 신문에서 읽은 기사들 중에 서울에서 이곳으로 잘 살아보자고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 마디 한다. “너 왜 왔니?”
이곳은 기회의 나라라고 한다. 단, 조건이 있다. 땀 흘려서 적신 땅 만큼 내 고향이 되고, 내 터전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많은 젊은 목사들이 목회지를 못 구해서 그들의 아내들이 봉제공장, 네일살롱에서 그 지독한 화공약품 냄새를 맡으면서 ‘남편이 어서 목회를 시작하게 해 주십시오’ 하는 눈물어린 기도 속에서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자동차 개스값에서 전화비용, 또 용돈까지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기의 영토확장을 위한 일꾼을 키우는 모습일까?
과연 하나님이 아내가 벌어오는 돈으로 집안에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까?

하나님의 나라는 아내가 벌어오는 눈물 젖은 달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
다. 목회는 맨발로 시작하는 자에게만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지금 하나님이 맨션에 살고 계실까?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천막 속에서 살고 계신다고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계신줄 모른다면 성경을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면 서울에서 온갖 보화를 싸가지고 이곳에 와서 맨션에서 사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그 자손들의 하는 짓은 가관이다. 완전히 서울에서 살던 마마보이 그대로 살고 있다. 영어도 삼류 영어에 온통 머리 속에는 우월감으로 오만한 부모의 삶을 그대로 닮고 있다.

이들이 시민권 100개가 있어도 이 나라에서 살아갈 능력이 없는 거다. 미국의 부(wealth)는 인격이 따라야 한다. 미국이 오늘날 잘 사는 나라가 되기까지 많은 인물들의 발자취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는데 카네기의 정신, 프랭클린과 같은 인물, 빌 게이츠 같은 정신 등을 우선 부모 자신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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