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친일 과거청산의 전제조건

2004-08-1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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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영(보스턴)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한지 5개월만에 다시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주장을 내세워 법 개정안을 내는 일로 인해 여야간에 정치문제로 비화,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법 개정안을 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주장은 친일분자를 가려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 이유라고 밝힌 반면에 야당인 한나라당은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마녀사냥을 위한 법안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패망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친일파 단죄에 대한 공론은 1948년에 제정되었다 소멸된 반민족 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친일분자와 반민족행위자를 처단하는 일이 있었으나 정치적인 갈등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사료 정리 차원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이름과 행적을 밝혔던 일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거세게 이는 양비론으로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가운데 민족의 숙제로 남긴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제기된 법개정 논란도 한일합방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36년간 일제 식민지 통치기간을 겪으면서 일신의 영화를 위해 스스로 친일행위에 가담한 자와 나라 없는 백성으로 일제 식민지 교육을 받고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 힘들게 일본군 장교나 관료에 등용되었던 사람들과 일제의 강압적인 채찍을 견뎌내지 못해 억지로 친일행위에 가담한 부류는 가려져야 한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일부의 주장 가운데는 해방 후 북한집단에서의 친일분자 숙청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친일파 숙청은 김일성의 항일운동을 표면에 내세워 그의 북조선 지배의 틀을 짜기 위한 계략으로 지주나 자본가 지식인을 친일분자로 몰아 무자비하게 숙청했던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여러 사이드에서 발표된 친일 인사 중에는 일제의 강압에 못이겨 억지로 끌려 가담한 사람들의 면면도 찾아볼 수 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육당 최남선,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랜 홍난파의 ‘울밑에선 봉선화’, 일본 유학생회에서 낭독된 춘원 이광수의 독립선언문은 지금도 삭제됨 없이 민족사의기록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비록 친일에 가담은 했으나 민족 개조를 위한 계몽활동, 학교와 학생을 지키기 위해 자기 희생 속에 행한 친일행위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정서다. 친일분자를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에는 먼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심판은 국론 분열만 부추길 뿐이다.

이번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의 주장하는 역사 바로세우기의 본뜻을 이해는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법개정을 주도하는 의원들 중 그들의 조부모나 부모형제 중 친일행위를 가리는데 자유스런 위치에 있는지를 먼저 밝히는 수순이 있어야 한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정략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을 주도하고 있는 ‘김희선 의원’의 경우, 그가 독립운동가의 손녀냐, 아니면 독립운동가의 조상을 사칭하고 있느냐에 의문점이 제기되어 본국사회가 떠들썩하다. 참으로 놀랍고 개탄스런 일이다. 분명하게 그 진위가 밝혀져야 한다.

국회의원 몇 사람들의 정치적인 주장 보다는 정부와 학계, 언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전제조건에서 악질 친일분자를 가려내는 일이 국민이 납득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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