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장기 불황시대

2004-08-12 (목)
크게 작게
이기영(주필)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마다 하는 말은 한국의 경제가 너무도 어렵다고 한다. 소수의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7년 전 외환위기 때 보다 더 심한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소식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경제뉴스가 심상치 않다.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상점마다 임대료를 못 내고 있는가 하면, 올 상반기 개인파산 신청자 수가 지난해 1년간 수치를 넘는다고 한다. 취직할 데가 없어 고학력자들이 노점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부진은 한국만이 겪고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경제도 말이 아니다. 지난 3년간 계속되어 온 불경기가 금년 초부터 상승 국면을 보이면서 개선될 희망을 주었으나 하반기에 들어서 다시 둔화되고 있다.

2000년 초에 피크를 이루었던 주가는 작년에 바닥을 치고 올라 금년 초까지 반등했으나 다시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내년이나 후년에 더블 딥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같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전반적인 경제상태가 결국은 부동산시장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 시기와 낙폭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젠가는 하락세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미국 경제는 고용이 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크레딧카드 빚과 주택모기지 등 개인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개인의 소득이 늘지 않고 부채 부담만 늘게 됨으로써 소비 가용액이 없어지면서 소비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를 못하게 되니 미덕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리하여 기업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가 상승하여 배럴당 45달러 선에 이르렀고, 테러 위협 등 경제에 대한 악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현재 관심사가 되고 있는 국제 유가는 최악의 경우 100달러까지 치솟을 우려가 있다고 하니 아직도 경제회복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것 같다.

미국의 경제가 가장 타격을 받았던 때는 1929년 대공황시대이다. 그 해 가을의 주식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수많은 기업의 도산과 대량 실업을 유발했고, 주가는 반등을 기도하다가 4년 후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후 미국경제는 세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장기
불황을 겼었다.

지난 2000년 미국의 주식 대폭락 당시 대공황의 반복이냐, 아니냐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이제 몇년이 지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대공황 때와 여러가지 다른 점이 있긴 하지만 장기불황의 시작이었음에는 거의 틀림없는 것 같다.

미국경제가 금년 상반기의 반등에서 다시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그런 패턴을 시사한다.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일시적으로 경제가 반등하는 듯 하더니 다시 하강추세로 나타났고, 일
본은 1990년대부터 장기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이제 미국도 그런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현상은 이미 한인들의 주종업종에서 체감되고 있다. 한때 수익성이 좋았던 청과델리업이 이제는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네일업계도 금년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소매업의 경우, 과거에는 가게 문만 열어놓고 있어도 손님이 찾아왔으나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가 버렸다. 맨하탄 거리에 빈 가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대공황 이후와 같이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세계의 경제는 쉽게 회복세로 올라서기 어려울 것 같다.

대공황의 후유증이 2차대전으로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겪고 있는 불황은 대체에너지의 개발과 같은 혁신적인 변화라든지 테러와의 전쟁에서 종결적인 상황이 생기든지, 어떤 인간생활의 패턴이 획기적으로 바뀔 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기불황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장기불황에 맞는 투자와 사업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